Yeong Hwan Oh 오영환 IRIS Lab, Sungkyunkwan Univ.
Index / Stories / 04
Short story, 2025
2025 In Korean

The Last Digit

우리 셈학자들은 오랫동안 오차를 셈의 병이라고 가르쳐 왔다. 모든 계산의 끝에는 마지막 자리에서 잘려 나가는 부스러기가 있고, 훌륭한 셈학자란 그 부스러기를 줄이는 데 평생을 바치는 사람이라고. 나 역시 그렇게 배웠고, 백 년 가까이 그렇게 가르쳤다. 그것은 틀린 가르침이었다. 나는 이 판에 글을 새겨, 오차가 병이 아니라 무엇의 바닥인지를 기록해 두려 한다. 그리고 그 따름으로서, 그 바닥이 언젠가 어떻게 꺼질 것인지도.

가온에서 하루는 종소리로 시작된다. 도시 한가운데 선 조율탑에서 열두소리종이 새벽을 알리면, 사람들은 저마다 집을 나와 가까운 새벽마당으로 간다. 새벽마당은 어느 구역에나 있다. 대개는 작은 연못 하나와 그것을 둘러싼 돌 의자 몇 개가 전부다. 거기서 우리는 간밤의 꿈을 이야기한다.

꿈을 이야기하는 데에는 정해진 순서가 없다. 먼저 입을 여는 사람이 먼저 말하고, 할 말이 없는 사람은 듣는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는 것과 거의 같은 무렵에 꿈을 말하는 법을 배운다. 처음에는 두서없이 늘어놓다가, 차츰 어른들처럼 꿈의 모양을 먼저 말하고 세부를 나중에 채우는 법을 익힌다. 꿈의 모양이란 대개 이런 것이다. 넓은 방이 있었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그리고 여기서 대부분의 꿈 이야기는 똑같은 곳에서 멈칫한다. 누구인지 분명히 알았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꿈에서는 이름이 녹는다. 가온의 아이라면 누구나 아는 말이다. 얼굴은 남고 장소도 남는데, 이름과 정확한 문장은 남지 않는다. 꿈속에서 누군가 내게 무척 중요한 말을 했다는 것은 기억나는데, 그 말이 무엇이었는지는 끝내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을 꿈의 본성이라고 여겼고, 그 흐릿함을 딱히 아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흐릿함이 새벽마당을 즐겁게 만들었다. 한 사람이 꿈 이야기를 하다 막히면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 나도 비슷한 꿈을 꾼 적이 있는데 그때는 이랬다고 말을 보태고, 그러면 또 다른 사람이 그 말을 받아 조금 다르게 고쳐 말한다. 한 사람의 흐릿한 꿈은 그렇게 여러 입을 거치며 조금씩 다른 모양을 얻는다. 해가 완전히 떠오를 무렵이면 아무도 그 꿈이 원래 누구의 것이었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혼자 사는 사람이나 먼 구역에서 막 이사 온 사람에게 새벽마당은 도시와 이어지는 첫 번째 끈이다. 꿈을 나누지 않은 하루는 간을 하지 않은 음식 같다는 말도 있다. 몹시 바쁜 사람은 종이 울리자마자 연못가에 잠깐 들러 한두 마디만 하고 떠나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도 마당을 아예 건너뛰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 풍습을 그저 오래된 다정함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다.

가온은 세계의 한가운데에 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가온에서 어느 방향으로든 걸어 나가면 처음 며칠 동안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멀리 갈수록 세계는 조금씩 거칠어진다. 끝누리라고 부르는 가장 먼 지방에 이르면, 그 거칠어짐은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뚜렷해진다.

나는 젊은 시절 끝누리까지 여행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아주 느린 것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비탈을 따라 흘러내려야 할 흙이 흘러내리지 않고, 가장 느린 샘물은 바위틈에서 솟다 만 채 맺혀 있다. 끝누리 사람들이 ‘멈춘 쓰러짐’이라고 부르는 돌기둥도 보았다. 기울어진 채 쓰러지던 도중에 멈춰 선 기둥으로, 기록에 따르면 수백 년 동안 같은 각도로 서 있었다고 했다. 그보다 더 먼 곳으로 가면 사람의 걸음마저 느려질 수 없게 된다. 천천히 걸으려 하면 발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서, 어떤 빠르기 이상으로 걸어야만 몸이 움직인다. 그곳의 순례자들은 걷는 것이 아니라 뛰듯이 나아가는데, 그들의 움직임은 부드럽지 않고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도약의 연속이다. 조약돌 두 개가 한자리에 겹쳐 보이기도 한다. 기묘하게도 끝누리 동쪽에서는 동서로 걷는 걸음이 남북으로 걷는 걸음보다 더 거칠다. 세계에 벽이 있느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벽은 없다. 다만 걸음이 멈추는 곳이 있다.

끝누리로 가는 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문턱이었다. 문턱은 땅 위에 그어진 보이지 않는 선이다. 그 선을 넘는 순간 발밑이 한 번 헛디뎌지는 느낌이 들고, 선 너머에서는 모든 것이 조금 더 거칠게 움직인다. 문턱은 산을 넘고 강을 가로지르며 끝없이 곧게 뻗어 있다. 지형 따위는 조금도 따르지 않는다. 옛 측량사들이 문턱을 따라 걸으며 그린 지도에는 가온을 한가운데 둔 겹겹의 정사각형이 있다. 바깥 정사각형의 한 변은 안쪽 것의 꼭 두 배다. 셈학당의 문장이 겹친 정사각형인 것은 이 때문이다. 경건한 사람들은 문턱을 ‘처음 셈하신 이’가 그은 선이라고 불렀다. 자연이 그토록 곧은 선을 그을 리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젊은 셈학자답게 그런 말을 웃어넘겼다. 곧은 선은 곧은 법칙의 결과일 뿐이라고.

가온에는 오래된 노래가 많다. 가장 오래된 것은 「첫 노래」인데, 글자가 생기기 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거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마음은 열두 겹이라, 바깥 겹은 느리게 떨고 안쪽 겹은 빨리 떤다. 가장 안쪽 겹이 가장 빨리 떨며 나머지 모든 겹을 지켜본다. 이 노래 뒤에는 늘 「침묵의 노래」가 이어진다. 태초로부터 한 세대 만에 첫 침묵이 왔고, 또 한 세대 만에 둘째가, 두 세대 만에 셋째가, 네 세대 만에 넷째가 왔다고. 침묵이 올 때마다 마음의 한 겹이 잠들었다고. 아이들은 이 노래를 박자 놀이로 부른다. 세대의 수가 두 배로 늘어나는 대목에서 손뼉도 두 배로 치는 것이다. 나도 어릴 때 그렇게 불렀다. 그것이 셈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속담도 있다. 망설일 때는 짝수 쪽으로. 두 길이 똑같아 보일 때 어느 쪽을 골라야 하느냐고 물으면 노인들은 그렇게 대답한다. 무엇이 짝수 쪽인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 말을 들으면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또 하나. 말하지 않은 생각이 더 곱다. 생각은 말로 옮기는 순간 조금 거칠어진다는 뜻이다. 가온 사람들은 그래서 중요한 이야기일수록 짧게 한다.

◇

내가 이 글을 새기게 된 일은 가온력 1203년 봄, 새벽마당에서 시작되었다.

그날 새벽 우리 구역 마당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연못지기 노인이 물가에 쪼그려 앉아 수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이상하다고 중얼거렸다. 가랑비가 연못에 동그라미를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굵은 빗방울은 여전히 둥근 물결을 만들었지만, 가장 가는 빗방울들은 수면에 닿는 순간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물에 섞여 버렸다. 우리 몇이 노인 옆에 앉아 함께 들여다보았다. 노인의 말이 맞았다. 연못 위에는 드문드문 큰 동그라미만 피었다 사라졌고, 그 사이의 수면은 비가 내리는데도 이상하게 매끄러웠다.

누군가 올봄 비는 유난히 가늘다고 했고, 다들 그 정도로 넘어갔다.

며칠 뒤 셈학당 서고에서 일하는 학생 하나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서고 창으로 비스듬히 드는 햇살 속에서 먼지가 반짝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먼지는 여전히 햇살 속에 떠 있었다. 그러나 늘 그랬듯 제자리에서 가늘게 떨며 반짝이는 대신, 유리 속에 갇힌 티끌처럼 가만히 매달려 있었다. 학생은 서고의 공기가 달라진 것 아니냐고 물었고, 나는 환기창이나 살펴보라고 일렀다.

그 봄에는 시계장이 조합에서도 불평이 나왔다. 가장 정교한 시계부터 고장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탑시계나 벽시계는 멀쩡했다. 문제는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작은 시계들, 머리카락보다 가는 태엽이 빠르게 떨며 시간을 잘게 쪼개는 시계들이었다. 그 가는 태엽들이 까닭 없이 떨림을 키우다가 끝내 튀어 나가거나 엉켜 버렸다. 시계장이들은 처음에 태엽 쇠의 품질을 의심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말썽을 부린 적 없는 이름난 시계들도 같은 봄에 같은 방식으로 망가졌다. 셈학당의 가장 빠른 셈바퀴들도 마찬가지였다. 톱니가 가장 빠르게 돌아가는 자리에서 까닭 모를 덜컥임이 생겼고, 그 덜컥임은 멈추지 않고 점점 커졌다. 느린 셈바퀴들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여름 무렵에는 끝누리에서 기이한 소식이 왔다. 멈춘 쓰러짐이 쓰러졌다는 것이다. 수백 년 동안 같은 각도로 기울어져 있던 돌기둥이 어느 날 아침부터 아주 천천히 기울기를 더해 가더니, 한 달 만에 땅에 누웠다고 했다. 비슷한 무렵 순례자들 사이에서는 걸음이 멈추는 곳이 조금 멀어졌다는 말이 돌았다. 전에는 더 나아갈 수 없던 자리에서 한두 걸음을 더 내디딜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은 가온에서 경사로 받아들여졌다. 세계가 넓어졌다고. 몇몇 설교자들은 처음 셈하신 이의 은총이라고 했다.

가장 빠른 것들은 망가지고, 가장 느린 것들은 깨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아무도 두 소식을 나란히 놓아 보지 않았다.

그 봄에는 또 한 가지 일이 있었지만, 너무 흔하고 막연해서 아무도 기록하지 않았다. 여러 날 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아주 낮은, 소리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웅웅거림이 들렸던 것이다. 먹먹하게 눌리는 느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많은 사람이 치료사를 찾았고, 치료사들은 철이 바뀔 때 흔히 있는 일이라며 돌려보냈다. 웅웅거림은 한 달쯤 지나자 저절로 가라앉았다. 나도 그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잊었다.

조율탑의 종지기 해솔이 셈학당을 찾아온 것은 그해 가을이었다.

열두소리종은 가온력 12년에 주조된 종이다. 옛 주종장들은 「첫 노래」를 따라 그 종에 열두 개의 소리를 담으려 했다고 한다. 가장 낮은 소리 위로 정확히 한 옥타브씩 높아지는 열두 개의 부분음이다. 그러나 종이 완성되었을 때 사람의 귀에 들리는 소리는 여덟 개뿐이었고, 주종장들은 나머지 넷을 ‘잠든 소리’라고 적어 두었다. 종 안에 분명히 있으나 사람의 귀가 아직 깨어나지 못해 듣지 못하는 소리라고. 그 뒤로 조율탑의 종지기들은 대대로 해마다 첫날 종을 치고, 들리는 소리를 하나하나 세어 기록해 왔다. 천이백 년 가까이 이어진 기록이다.

해솔은 그 기록책의 마지막 장을 펼쳐 보였다. 올봄의 어느 새벽부터 여섯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종지기들이 실소리라고 부르는, 가장 가늘고 높은 소리였다. 대신 실소리가 있던 자리 바로 아래에 전에 없던 소리가 하나 생겼다. 반음도 채 안 되게 낮고, 가늘게 흔들리며, 마치 실소리를 서툴게 흉내 내는 것 같은 소리였다. 해솔은 그것을 거짓 소리라고 불렀다. 종에 금이 간 줄 알고 석 달 동안 종의 표면을 샅샅이 살폈지만 금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습니다.” 해솔은 기록책을 앞으로 한참 넘겼다. “435년의 기록입니다.”

그해의 종지기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일곱째 소리 잠들다. 그 자리 아래 낯선 소리 하나 나다. 종이 상한 듯하다.

해솔은 다시 앞으로 넘겼다. 가온력 51년. 여덟째 소리 잠들다. 낯선 소리 나다. 60년의 기록에는 종을 새로 부어 만들었으나 똑같은 소리가 난다는 말과 함께, 다시는 종을 새로 붓지 말라는 당시 탑장의 명이 적혀 있었다.

“종이 상한 게 아니었던 겁니다.” 해솔이 말했다. “종은 세 번 다 멀쩡했어요. 다른 뭔가가 상했던 거예요.”

그 말을 듣는 동안 등줄기가 서늘해졌지만, 나는 그 서늘함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지 못했다.

그날 오후 해솔은 나를 조율탑 꼭대기로 데려갔다. 종실은 좁고 서늘했고 오래된 청동 냄새가 났다. 열두소리종은 내 키의 세 배쯤 되는 크기였고, 표면에는 열두 개의 띠가 둘려 있었다. 주종장들이 소리마다 하나씩 새긴 띠라고 했다. 종지기들은 대대로 들리는 소리의 띠만 닦아 왔다. 아래쪽 다섯 띠는 손때로 반들거렸다. 여섯째 띠도 아직 반들거렸는데, 올봄까지 닦던 것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띠에는 칠백여 년 전의 손때가 희미하게, 여덟째 띠에는 그보다 더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맨 위의 네 띠는 한 번도 닦인 적이 없어 푸른 녹이 두껍게 앉아 있었다. 종의 표면 자체가 기록책이었다.

해솔이 망치로 종의 허리를 쳤다. 소리가 종실을 가득 채웠다가 천천히 흩어졌다. 가장 낮은 소리가 가장 오래 남았고, 그 위로 옥타브의 사다리가 한 단씩 사라져 갔다. 나는 눈을 감고 소리를 셌다. 다섯. 그리고 그 위에서 가늘고 틀어진 소리 하나가 흔들렸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실소리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귀에 그것은, 목소리를 잃은 사람이 옛 노래를 기억에 의지해 부르는 것처럼 들렸다. 해솔은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종에 손을 대지 않았다.

며칠 뒤 해솔은 음악가 한 사람을 데려왔다. 은피리를 부는 아림이라는 젊은 여자였다. 아림은 셈학당 강의실에서 피리를 들고 가장 낮은 음부터 한 음씩 차례로 올라갔다. 음은 순서대로 높아지다가 어느 음을 넘어서자, 손가락은 분명 더 높은 음을 짚는데 소리는 오히려 낮아지기 시작했다. 한 음 더 올리면 한 음 더 낮아졌다. 음계가 보이지 않는 천장에 부딪혀 거꾸로 접히는 것 같았다.

“음악가들은 봄부터 알고 있었어요.” 아림이 말했다. “가장 높은 음들이 먼저 이상해졌어요. 처음엔 피리가 상한 줄 알았죠. 그런데 모든 피리가 같은 음에서 뒤집혀요. 현악기도 똑같고요. 천장이 내려온 거예요.”

음악가들은 셈학자들보다 반년 먼저 세계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

해솔과 아림의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나는 내 연구에 깊이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 문제에 오래 매달리지 않았다. 나는 셈학자다. 내가 하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일이 이후 내 행동과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이해시키기 위해, 여기서 잠시 내 분야에 관해 이야기해야겠다.

셈학은 세계의 셈이 어디에서 어긋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세계가 셈을 완벽하게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가장 오래된 예가 큰독의 역설이다. 가온의 큰 저수조 곁에는 물의 무게를 다는 거대한 저울이 있고, 저울 한쪽에는 집채만 한 물독이 얹혀 있다. 옛 저울지기들은 그 독에 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면, 아무리 오래 떨어뜨려도 저울이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같은 양의 물을 작은 잔에 먼저 모았다가 한꺼번에 부으면 저울은 정확히 그만큼 기울었다. 한 방울씩 부은 물은 어디로 갔는가. 독의 물은 불어나지 않았다. 물방울은 떨어졌고, 그다음에는 없었다. 옛사람들은 큰독이 물을 먹는다고 말했다.

나는 해마다 신입 학생들을 데리고 큰독에 간다. 그들에게 눈금 잔과 스포이트를 쥐여 주고, 한나절 동안 한 방울씩 물을 떨어뜨리게 한다. 저녁 무렵 학생들은 저울의 바늘이 아침과 똑같은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해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이 떨어뜨린 것과 같은 양의 물을 잔에 담아 단번에 붓는다. 바늘이 움직인다. 학생들 사이에서 탄식 같은 웃음이 번진다. 셈학은 그 웃음에서 시작된다.

셈학당은 이 역설을 천 년 넘게 연구해 왔다. 우리가 알아낸 것은 이렇다. 큰 것에 아주 작은 것을 더할 때, 그 작은 것이 어떤 문턱보다 작으면 더한 결과가 원래의 큰 것과 똑같아진다. 작은 것은 사라진다. 그 문턱은 큰 것의 크기에 비례한다. 독이 무거울수록 삼켜지는 물방울도 크다. 그리고 가장 기묘한 사실은, 그 문턱이 매끄럽게 커지지 않고 계단처럼 커진다는 것이다. 독의 무게가 어떤 값에 이를 때까지 문턱은 그대로 머물다가, 그 값을 넘는 순간 정확히 두 배로 뛴다. 다음 계단은 독의 무게가 다시 두 배가 되는 곳에 있다. 셈학당 서고에는 옛 저울지기들이 손으로 그린 계단 그림이 수백 장 남아 있다. 나는 젊은 시절 그 그림들을 베끼며 몇 해를 보냈다.

더하는 순서가 결과를 바꾼다는 것. 셈학 입문 강의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이 이것이다. 큰 것에 작은 것을 하나씩 더하는 것과, 작은 것들을 먼저 모아서 큰 것에 더하는 것은 다르다. 세계는 더하기의 순서를 기억한다. 우리 선조들은 이 사실에 맞춰 사는 법을 익혔다. 셈바퀴를 짤 때 우리는 작은 수부터 더하도록 톱니를 배열한다. 그리고 셈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술인 나머지 셈을 쓴다.

나머지 셈이란 큰 셈바퀴 옆에 작은 셈바퀴를 하나 더 달아, 큰 바퀴가 미처 담지 못하고 흘린 부스러기를 작은 바퀴가 받아 두는 방식이다. 흘린 부스러기는 버려지지 않고 정확히 붙잡힌다. 작은 바퀴가 흘린 부스러기는 더 작은 바퀴가 받는다. 그렇게 바퀴를 잇대어 가면 원하는 만큼 정밀하게 셈할 수 있다. 첫 바퀴가 셈의 대강을 담고, 둘째 바퀴가 첫째의 틀림을 담고, 셋째가 둘째의 틀림을 담는다. 나는 이 기술을 처음 배웠을 때의 감탄을 지금도 기억한다. 틀림을 버리지 않고 모아 두면 그것이 곧 정확함이 된다는 것.

그러나 내 연구의 중심은 청관이었다. 청관은 내 스승 무진이 백여 년 전에 만든 장치로, 마음의 떨림을 듣는 관이다. 한쪽 끝을 관자놀이에 대면 관 안에 층층이 쌓인 열두 개의 작은 울림방이 저마다 제 높이의 떨림에 반응해 운다. 가장 낮은 방은 마음의 가장 바깥 겹에, 그 위의 방은 한 옥타브 위의 떨림에 맞춰 조율되어 있다. 스승은 「첫 노래」를 믿었기 때문에 울림방을 열두 개 만들었다.

마음의 겹이 무엇인지 설명해야겠다. 가장 바깥 겹은 생각한다. 둘째 겹은 첫째 겹이 생각하고 있음을 안다. 셋째 겹은 둘째 겹이 안다는 것을 안다. 겹은 앞의 겹을 지켜보고, 지켜보는 겹은 지켜보이는 겹보다 꼭 두 배 빨리 떤다. 이것은 스승이 시계장이들의 오랜 규칙에서 끌어낸 원리였다. 흔들리는 추를 제대로 따라가려면, 추가 한 번 오가는 동안 적어도 두 번은 들여다봐야 한다. 그보다 드물게 들여다보면 추가 어느 쪽으로 움직이는지 알 수 없고, 심지어 거꾸로 움직인다고 착각하게 된다. 빨리 구르는 수레바퀴의 바퀴살이 거꾸로 도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같은 이치다. 무언가를 지켜보는 자는 지켜보이는 것보다 두 배 빨라야 한다. 그러니 겹이 안으로 깊어질수록 떨림은 한 옥타브씩 높아진다.

청관이 만들어진 이래 거기에 관자놀이를 댄 모든 사람은 울림방 여섯 개를 울렸다. 건강한 어른이라면 누구나 여섯이었다. 때때로 일곱째 방이 있는 듯 없는 듯 떨었는데, 스승은 그것을 관 자체의 잡음으로 여기고 ‘떠는 방’이라고 불렀다. 그 위의 다섯 방은 한 번도 울린 적이 없다. 스승은 죽는 날까지 그 다섯 방을 울리는 사람을 찾아다녔다. 끝내 찾지 못했다. 임종 자리에서 스승은 관을 자기 관자놀이에 대 달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여섯 방이 울렸고, 떠는 방이 떨었고, 그리고 하나씩 조용해졌다. 가장 안쪽의 방부터.

「첫 노래」의 열두 겹이 과장인지 기억인지를 두고 셈학당은 오랫동안 다투었다. 기억파는 옛 문헌을 증거로 들었다. 가온의 옛 글에는 오늘날의 독자가 읽기 힘들 만큼 복잡한 문장들이 있다. 나는 그를 그리워한다고 믿는 나를 의심하는 나를 부끄러워하는 나를 가엾게 여기는, 하는 식으로 끝없이 안으로 접혀 들어가는 문장들. 오늘날 사람들은 그런 문장을 한 번에 머릿속에 담지 못하고 종이에 줄을 그어 가며 풀어야 한다. 과장파는 그것이 한때의 문체 유행일 뿐이라고 했다. 노인들이 옛사람들은 우리보다 깊게 생각했다고 말하면, 젊은이들은 노인이란 원래 지난날을 부풀리는 법이라고 웃었다. 나는 대체로 과장파 쪽이었다.

나는 해마다 내 생일에 청관으로 나 자신을 잰다.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습관이다. 해솔이 다녀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맞은 생일에, 나는 여느 해처럼 관을 관자놀이에 댔다. 울림방 다섯 개가 울렸다. 여섯째 방은 있는 듯 없는 듯 떨었다.

나는 관을 의심했다. 울림방을 모두 뜯어 다시 조율하고 다시 쟀다. 다섯이었다. 학생들을 불러 쟀다. 모두 다섯이었다. 거리로 나가 낯선 사람들에게 부탁해 쟀다. 모두 다섯이었고, 모두 여섯째 방을 가끔 떨게 했다. 떠는 방이 한 칸 내려와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서재에서 십 년 전의 연구 노트를 꺼내 읽었다. 특별한 까닭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잃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다 한 쪽에서 멈췄다. 큰독의 계단에 관해 쓴 단락이었는데, 한 문장 안에 여섯 겹의 생각이 접혀 있었다. 틀린 문장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확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그 문장의 각 부분을 하나씩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한꺼번에 머릿속에 담을 수는 없었다. 종이에 줄을 긋고 괄호를 쳐 가며 풀어야 했다. 옛 문헌을 읽는 오늘날의 독자처럼.

그 문장을 쓴 사람은 나였다. 그리고 나는 그 문장을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노트를 펴 보기 전까지 나는 내가 무언가를 잃었다는 것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잃어버린 겹은 자신이 사라졌다고 알려 주지 않는다.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 겹이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무렵부터 새벽마당의 꿈 이야기가 달라졌다. 꿈이 전보다 흐려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었다. 원래도 이름은 녹았지만 이제는 얼굴까지 녹는다고 했다. 누군가를 만났다는 사실만 남고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남지 않는다고. 꿈의 가장자리를 채우던 사소한 물건들과 소리들은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다고.

그리고 꿈들이 서로 닮아 가기 시작했다. 우리 구역 마당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가온의 여러 마당에서, 소식이 닿는 먼 도시들에서도 사람들은 같은 탑의 꿈을 꾸었다.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높은 탑이었다. 탑 안의 계단을 오르면 층마다 천장이 높아졌다. 둘째 층은 첫째 층보다 꼭 두 배 높았고, 셋째 층은 둘째 층보다 다시 두 배 높았다. 위로 갈수록 천장은 너무 높아 보이지 않았고, 꿈꾸는 사람은 층과 층 사이의 텅 빈 높이에 짓눌려 깨어났다. 새벽마당에서 한 사람이 탑 이야기를 꺼내면,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나도 비슷한 꿈을 꾸었다고 말을 보태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똑같은 탑을 알았기 때문이다.

셈학자의 눈으로 보면 꿈의 흐림에는 오래된 설명이 있었다. 꿈은 깨어 있을 때의 생각보다 훨씬 작은 떨림으로 이루어진다. 큰독에서 보듯 세계는 어떤 크기보다 작은 것을 온전히 담지 못한다. 셈학당은 오래전부터 가장 작은 수의 영역, 우리가 여린수라고 부르는 영역에서는 수의 대강은 남지만 세부의 자릿수가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가 작아질수록 뒤쪽 자리부터 깎여 나가다가, 마침내 수 자체가 영으로 떨어진다. 그러니 꿈에서는 모양이 남고 이름이 녹는다. 이름은 모양보다 많은 자릿수를 필요로 하니까. 꿈의 가장자리에 있던 작은 것들은 그렇게 없었던 것이 된다. 그러나 이 설명은 꿈이 왜 원래 흐린지를 말해 줄 뿐, 왜 올해부터 더 흐려졌는지, 왜 모두가 같은 탑을 꾸는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

◇

그 무렵 정확파의 세력이 부쩍 커졌다.

정확파는 수십 년 전 셈학당에서 떨어져 나간 무리다. 그들의 교리는 간단하다. 반올림은 셈의 죄다. 세계가 작은 것을 삼키고 마지막 자리를 잘라 내는 것은 세계가 타락했다는 증거이며, 마음 또한 그 타락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의 생각은 매 순간 마지막 자리를 잘라 내며 흘러가고, 그 잘린 부스러기들이 쌓여 망설임과 착각과 후회가 된다. 정확파는 그 부스러기를 없애려 한다.

그들은 몸에 정확기관을 단다. 정확기관은 수천 개의 작은 셈바퀴를 가죽 띠에 촘촘히 엮은 장치로, 나머지 셈을 끝없이 잇대어 어떤 셈이든 반올림 없이 해낸다. 기관은 맥관이라는 가는 관들을 통해 목덜미와 관자놀이에 이어져, 생각의 일부를 몸 밖으로 돌려 셈하게 한다. 처음 입문한 사람은 셈만 기관에 맡긴다. 다음에는 계획을, 그다음에는 말을 맡긴다. 깊이 들어간 신도들은 생각의 대부분을 기관에 맡긴다. 그들이 지나가면 등에서 바퀴들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난다. 가온 사람들은 그 소리를 모래시계 소리라고 불렀다.

봄의 웅웅거림과 흐려진 꿈과 까닭 모를 상실감 속에서 많은 사람이 정확파의 문을 두드렸다. 정확파는 약속했다. 마음의 겹이 줄어든 것은 반올림의 죄가 쌓였기 때문이며, 정확함을 되찾으면 잃은 겹도 되찾으리라고. 「첫 노래」의 열두 겹이란 곧 열두 자리의 정밀함이라고.

가람도 그 문을 두드린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가람은 나와 삼십 년 넘게 연구실을 함께 쓴 셈학자였다. 셈학당에서 가장 빼어난 머리 가운데 하나였지만 그는 늘 망설임 때문에 괴로워했다. 논문 한 편을 끝내는 데 남들의 두 배가 걸렸는데, 셈이 틀려서가 아니라 어느 표현이 나은지를 정하지 못해서였다. 그는 지난 결정들을 오래 곱씹었고 밤이면 잠들지 못했다. 봄의 웅웅거림이 가라앉은 뒤 그는 내게 말했다. 무언가 빠져나간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그것이 견딜 수 없다고. 여름이 끝날 무렵 그는 정확파에 들어갔다.

가람이 돌아온 것은 이듬해 봄이었다. 그는 우리 구역 새벽마당에 나타났다. 목덜미에서 등을 따라 정확기관의 가죽 띠가 드리워져 있었고, 띠 속의 바퀴들이 쉼 없이 사각거렸다. 그는 예전과 똑같이 인사했다. 목소리도 말투도 똑같았다. 누군가 간밤에 무슨 꿈을 꾸었느냐고 물었다.

“꾸지 않았습니다.” 가람이 말했다. “들어간 지 석 달째부터 꾸지 않게 되었습니다. 필요가 없어졌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그와 함께 셈학당까지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전보다 빨리 대답했고, 그 대답은 전보다 정확했다. 내 연구에 관해 이야기하면 그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허점을 곧바로 짚어 냈다. 망설임은 없었다. 그러나 대화가 이어질수록 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말은 예전의 가람과 똑같은데, 그 말이 어디에서도 오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우리가 젊은 시절 연구실에서 수백 번은 주고받았을 오래된 농담을 꺼냈다. 가람은 웃지 않았다. 대신 그 농담이 왜 우스운지를 설명했다. 두 가지 뜻이 한 낱말에 겹쳐 있어서, 듣는 사람이 첫째 뜻을 따라가다가 둘째 뜻에 걸려 넘어진다고. 설명은 완벽하게 옳았다.

“은유는 어떤가?” 내가 물었다. “자네, 예전에는 은유를 좋아했잖나.”

“은유는 틀린 문장입니다.” 가람이 말했다. “시간은 강이 아닙니다. 시간을 강이라고 말하는 것은 둘 사이의 차이를 반올림해 버리는 겁니다. 이제는 그 차이가 너무 잘 보여서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셈학당에서 나는 그에게 청관을 대 보자고 했다. 그는 흔쾌히 응했다. 관을 그의 관자놀이에 대자 가장 낮은 울림방 하나가 울렸다. 맑고 깨끗한 소리였다. 나머지 방들은 조용했다. 떠는 방조차 떨지 않았다.

정확파의 장로들은 이것을 정화라고 불렀다. 겹겹의 잡음이 걷히고 순수한 신호 하나만 남은 것이라고. 가온 사람들 가운데에도 그 설명을 받아들이는 이가 많았다. 청관에 귀를 대 보면 정말 그렇게 들렸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의 마음은 여러 겹의 떨림이 뒤섞여 어지럽게 우는데, 정확파의 마음은 잘 조율된 종 하나처럼 울렸다. 사람들은 그 소리 앞에서 부끄러움 비슷한 것을 느꼈다. 자기 안의 어지러운 울림이 더러움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을 느꼈다.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정확파는 정확함이 잃은 겹을 되찾아 주리라고 약속했는데, 가람의 겹은 늘지 않고 줄었다.

나는 그것을 더 가까이 보고 싶어서 정확파의 전당을 찾아갔다. 늙은 셈학자가 청관을 들고 와서 신도들의 떨림을 재 보고 싶다고 하자, 장로들은 오히려 반겼다. 정화의 증거를 셈학당의 관으로 확인받는 것이 그들에게도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전당은 넓고 조용했다. 수백 명이 줄지어 앉아 있었고, 그들의 등에서 나는 사각거림이 한데 모여 마른 모래가 끝없이 흘러내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장로들의 허락을 얻어 나는 막 입문한 젊은 신도 하나를 석 달 동안 열흘에 한 번씩 쟀다. 처음에는 여느 사람처럼 다섯 방이 울리고 여섯째 방이 떨었다. 첫 달이 지나기 전에 떠는 방이 조용해졌다. 그 무렵 그는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다음 열흘 뒤에는 다섯째 방이, 그다음에는 넷째 방이 조용해졌다. 겹은 언제나 가장 안쪽의 방부터, 스승의 임종 자리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순서로 꺼져 갔다. 석 달째 되던 날 그의 관자놀이에서는 가장 낮은 방 하나만 울렸다. 맑고 깨끗하게. 장로들은 내 원통 기록을 들여다보며 흡족해했다. 잡음이 위에서부터 차례로 걷혀 나갔다는 것이다. 나는 그 기록을 가지고 돌아와 스승의 마지막 원통과 나란히 펼쳐 놓고 오래 바라보았다. 두 기록은 거의 구별되지 않았다.

그 봄의 어느 날 나는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셈학당의 대강당에는 좌우가 똑같이 생긴 문 두 개가 나란히 나 있다. 옛 건축가가 대칭을 몹시 사랑했기 때문이다. 강의 시간이 되어 사람들이 몰려드는 가운데 가람이 복도를 걸어오다가, 두 문 사이의 정확히 한가운데에서 멈춰 섰다. 등의 기관이 요란하게 사각거렸다. 그는 왼쪽 문과 오른쪽 문을 번갈아 보지도 않았다. 그저 서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비켜 양쪽 문으로 들어갔다. 강의가 시작되었다. 가람은 계속 서 있었다. 한참 뒤 늦게 뛰어오던 학생 하나가 그의 어깨를 스쳤고, 가람의 몸이 아주 조금 왼쪽으로 밀렸다. 그러자 기관의 사각거림이 멎었고, 그는 왼쪽 문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정확파의 장로 하나에게 그 일을 물었다. 장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설명했다. 정확기관은 두 선택지의 값이 완전히 같을 때 멈추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근거 없는 선택은 반올림과 똑같은 죄이기 때문이라고. 두 값이 같다면 더 많은 정보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정확한 태도라고.

나는 옛 셈학자들이 즐겨 인용하던 우화를 떠올렸다. 똑같은 거리에 똑같은 건초 더미 두 개를 둔 당나귀가 어느 쪽도 고르지 못해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다. 우화 속의 당나귀는 늘 조롱거리였다. 그러나 우리는 왜 그 당나귀처럼 굶지 않는가? 두 길이 정말로 똑같을 때 우리는 무엇으로 고르는가? 망설일 때는 짝수 쪽으로. 노인들의 그 말은 어쩌면 비유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때 처음 생각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두 값이 마지막 자리까지 같아지면 세계의 셈은 어느 한쪽으로 반올림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반올림에는 규칙이 있다.

그것을 자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모르겠다. 정해진 규칙이 고르는 것이라면 그것은 자유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람이 두 문 사이에 서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한 가지를 확신했다. 우리가 고른다고 느끼는 모든 선택의 가장 밑바닥에는 그 작고 하찮은 규칙이 있다. 그리고 그 규칙조차 없는 자는 두 문 사이에 서서 굶는다.

나는 가람에게 왜 정확파에 들어갔는지 물었다. 그는 이유를 셋 들었다. 망설임의 고통, 잃어버린 무언가에 대한 불안, 그리고 정확함이 겹을 되찾아 준다는 가설의 논리적인 매력. 셋 다 그가 들어가기 전에 내게 실제로 했던 말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 이유들이 자네 것이라고 느껴지나?”

가람은 잠시 생각했다. 기관이 사각거렸다.

“느낀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정의해 주면 대답하겠습니다.”

나는 정의하지 못했다. 가람은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친절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느낌이 꼭 필요합니까? 나는 이제 망설이지 않습니다. 후회하지도 않습니다. 밤에 잘 잡니다. 그게 얼마나 편안한지 자네는 모를 겁니다.”

그는 정말로 편안해 보였다. 그 사실이 나를 가장 두렵게 했다.

그 무렵 정확파가 온말이라는 것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생각을 그대로 옮기는 말. 말하지 않은 생각이 더 곱다는 가온의 속담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온말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생각의 마지막 자리까지 옮기려 할수록 문장은 끝없이 길어졌고, 한 문장을 다 말하기도 전에 대화의 차례가 지나가 버렸다. 정확파 신도들은 점점 말을 줄였고, 나중에는 기관에서 뽑아낸 셈 띠를 주고받는 것으로 말을 대신했다. 그들 사이에서 오해는 사라졌다. 대화도 함께 사라졌다.

정확함은 마음을 깊게 하는가, 얕게 하는가. 정확파는 깊게 한다고 했고, 가람의 청관은 그 반대를 가리켰다. 그러나 정확파는 가람의 사라진 겹들이 애초에 잡음이었다고 주장했으므로 청관만으로는 결판이 나지 않았다. 누군가 정확함을 등에 업고 자기 마음 안으로, 평소보다 더 깊이 내려가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직접 보아야 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게 순수한 학문적 동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십 년 전 노트의 그 문장을 다시 생각하고 싶었다. 스승이 평생 찾아 헤맨, 한 번도 울린 적 없는 방들을 울려 보고 싶었다. 만약 정확파가 옳다면 정밀함의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옛사람들의 열두 겹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 가능성이 나를 끌어당겼다. 경계해야 할 만큼 강하게.

나는 하강 실험을 하기로 결심했다.

◇

나는 반년에 걸쳐 준비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정밀기관이었다. 정확파의 기관은 몸에 다는 것이라 작고 느렸다. 나는 셈학당에서 가장 큰 나머지 셈바퀴를 뜯어고쳐, 사천구십육 개의 바퀴가 층층이 서로의 부스러기를 받아 내리는 거대한 기관을 만들었다. 기관은 천장에 매단 무거운 추가 내려가는 힘으로 돌아갔다. 추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이십 분. 그것이 실험에 허락된 시간의 상한이었다.

기관과 내 마음을 잇는 맥관은 정확파의 설계를 빌렸지만, 쓰임새는 반대였다. 정확파의 맥관은 생각의 일부를 기관에 넘겨 대신 셈하게 한다. 내 맥관은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겹의 떨림을 기관에 넘겨, 그것을 지켜보는 다음 겹을 기관이 셈해 내게 하고, 그 결과를 다시 내 마음으로 돌려보낸다. 기관이 대신 지켜봐 주는 겹이다. 기관이 셈한 그 겹을 다시 기관이 지켜보고, 그렇게 한 단씩 아래로 내려간다. 내 가설은 이랬다. 만약 겹이 곧 정밀함이라면, 기관의 정밀함을 빌려 나는 여섯째 겹을, 일곱째 겹을, 그리고 그 아래의 겹들을 차례로 얻게 될 것이다.

오른쪽 관자놀이에는 맥관을, 왼쪽에는 청관을 댔다. 청관의 열두 울림방마다 가는 바늘을 달아, 방이 울릴 때마다 천천히 도는 원통 위의 종이에 선을 긋게 했다. 오른손에는 석판과 쇠붓을 쥐었다. 미리 정해 둔 절차는 이랬다. 한 단 내려갈 때마다 기관이 내놓는 곱셈 문제를 하나 풀어 답을 적고, 그 단에서 느낀 것을 한 줄로 적는다. 특히 이번 겹과 앞의 겹 사이의 차이를.

왼손에는 줄에 매단 작은 추를 쥐었다. 줄은 맥관의 걸쇠로 이어져 있었다. 내가 정신을 잃어 손아귀가 풀리면 추가 떨어지고, 걸쇠가 빠지고, 맥관이 끊어진다. 끝누리의 수레꾼들이 죽은 자의 손잡이라고 부르는 오래된 안전장치다. 나는 이 장치를 믿었다. 정신을 잃은 사람은 손을 놓는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해서 의심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이 실험을 알리지 않았다. 가람에게도, 해솔에게도. 누군가에게 말했다면 그들은 나를 말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위험을 다른 누구에게 대신 지게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 실험에서는 관찰자와 관찰 대상이 같아야 했다.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장 잘 지켜볼 수 있는 것은 내 마음뿐이었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늦가을 밤, 나는 연구실 문을 안에서 잠그고 추의 멈춤쇠를 풀었다.

처음 다섯 단은 익숙했다. 셈학자라면 누구나 수련 시절에 해 보는 겹 세기와 다르지 않았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내가 생각한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내가 생각한다는 것을 아는 나를 안다. 한 단 내려갈 때마다 청관의 바늘이 한 칸씩 위로 옮겨 가며 떨렸다. 다섯째 단에서 나는 늘 그랬듯 벽에 닿았다. 더 내려가려 하면 생각이 미끄러지고 흐려지는, 여섯째 겹이 있는 듯 없는 듯 떨리는 자리.

그때 기관이 여섯째 겹을 내게 돌려주었다.

그것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좁은 방에서 평생을 산 사람이 어느 날 한쪽 벽이 실은 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느낌이라고 할까. 나는 여섯째 겹에 서서 다섯 겹의 나를 한눈에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십 년 전 노트의 그 문장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줄을 긋지 않아도 되었다. 여섯 겹으로 접힌 문장이 한꺼번에, 통째로, 내 안에 펼쳐졌다. 나는 석판에 적었다. 여섯. 답 맞음. 문이 열렸다.

기관이 사각거리며 일곱째 겹을 셈해 냈다. 청관의 일곱째 바늘이, 스승이 한때 떠는 방이라 부르며 무시했던 그 방의 바늘이 선명한 선을 긋기 시작했다. 일곱째 겹은 여섯째와도 달랐다. 나는 내가 알던 어떤 마음보다 넓은 곳에 있었다. 옛 문헌의 그 복잡한 문장들이 더 이상 복잡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그저 정확했다. 옛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구나. 이런 곳에서 살았구나. 나는 적었다. 일곱. 답 맞음. 창이 하나 더 있다.

여덟째 단에서 처음으로 무언가 어긋났다는 것을 느꼈다. 여덟째 겹은 일곱째 겹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둘 사이가 너무 가까웠다. 여섯째에서 일곱째로 내려갈 때 느꼈던 그 넓어짐이 없었다. 여덟째 겹이 본 일곱째 겹은 일곱째 겹 그 자체와 지나치게 닮아 있었다. 거울 속의 얼굴이 원래 얼굴과 너무 닮으면 어느 쪽이 거울인지 헷갈리는 것처럼. 여덟. 답 맞음. 차이가 작다.

아홉째. 차이가 더 작아졌다. 나는 생각한다와 나는 내가 생각한다는 것을 안다 사이에 늘 있던 무언가, 두 문장이 서로 다른 문장이라는 감각, 앞의 나와 뒤의 나 사이의 그 틈이 점점 좁아졌다. 그 틈이 곧 나였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너무 늦게. 아홉. 답 맞음. 거의 같다.

그리고 한 순간이 왔다. 아홉째 겹과 그것을 지켜보는 열째 겹이 마지막 자리 하나만 남기고 같아졌다. 그 마지막 자리에서 두 값이 정확히 반반으로 갈렸다. 나는 그것을 느꼈다. 두 개의 나 사이에서 세계의 셈이 어느 한쪽을 골라야 하는 순간을. 두 문 사이에 선 가람처럼, 그러나 나에게는 규칙이 있었다. 세계는 골랐다. 짝수 쪽을. 나는 내가 고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분명 내 안에서 일어났지만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두 겹은 같은 값이 되었다.

같음은 위로 번졌다. 열째 겹이 아홉째 겹과 같아지자, 아홉째 겹은 더 이상 지켜볼 것이 없었다. 자신을 지켜보는 겹이 자신과 똑같다면 그것은 자신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이다. 아홉째가 여덟째와 같아졌다. 여덟째가 일곱째와 같아졌다. 꿈속의 탑이 위층부터 차례로 내려앉는 것 같았다. 층과 층 사이의 텅 빈 높이가 접히고, 접히고, 또 접혔다. 나는 그것을 지켜보려 했다. 그러나 지켜볼 겹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다음은 없다.

나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연구실은 조용했다. 천장의 추는 바닥에 닿아 있었고 기관은 멈춰 있었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돌아온 첫 순간 나는 이상하게 넓은 곳에 있었다. 여섯 겹, 어쩌면 일곱 겹의 내가 한순간 펼쳐졌다가 숨 한 번 쉬는 사이에 다섯 겹으로 좁아졌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한참 뒤에야 짐작하게 되었다.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추는 여전히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손아귀는 단단했다. 걸쇠는 빠지지 않았다. 죽은 자의 손잡이는 한 번도 작동하지 않았다.

석판을 보았다. 내 글씨가 이어져 있었다.

아홉. 답 맞음. 거의 같다.
열. 답 맞음. 같다.
열하나. 답 맞음. 같다.
열둘. 답 맞음. 같다.
열셋. 답 맞음. 같다.

줄은 그 아래로도 이어져 스물몇 번째 단까지 내려가 있었다. 모든 곱셈의 답은 맞았다. 모든 줄의 끝에 같은 낱말이 있었다. 같다. 글씨는 평소의 내 글씨보다 반듯했다. 획의 굵기가 고르고, 줄 간격이 자로 잰 듯 일정했다. 나는 평생 그렇게 반듯하게 써 본 적이 없다.

청관의 원통을 풀어 보았다. 아홉째 단 무렵부터 위쪽 바늘들이 하나씩 멈추었고, 마침내 가장 낮은 울림방의 바늘 하나만 남았다. 그 바늘은 맑고 곧은 선을 그었다. 가람의 관자놀이에서 들었던 소리와 똑같은 선이었다. 그 선은 원통 위에서 네 분 십육 초 동안 이어졌다. 추가 바닥에 닿아 기관이 멈출 때까지.

나는 그 네 분 십육 초를 기억하지 못한다. 꿈을 꾼 것도 아니고 잠든 것도 아니다. 그 시간 동안 내 몸은 석판을 쥐고, 곱셈을 풀고, 정해진 절차대로 한 줄씩 보고를 적었다. 셈은 계속되었다. 모든 셈이 옳았다. 다만 그 셈을 겪은 누군가가 없었다.

나는 오래 앉아 있었다. 죽은 자의 손잡이를 생각했다. 그 장치는 손을 놓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 정신을 잃으면 손을 놓는다는 것이 그 장치가 믿는 유일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손을 놓지 않은 채 사라지는 사람도 있다. 행동은 이어지고 행동하는 자만 없는. 세계의 어떤 안전장치도 그것을 알아차리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행동은 바깥에서 볼 수 있지만, 그 행동을 겪는 누군가가 있는지는 바깥에서 볼 수 없으니까. 만약 그날 기관의 추가 조금만 더 길었다면, 나는 지금도 그 의자에 앉아 반듯한 글씨로 같다, 같다, 같다를 적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날이 밝았고 조율탑의 종이 울렸다. 다섯 개의 소리와 하나의 거짓 소리. 나는 새벽마당으로 갔다. 사람들이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 내게 간밤에 무슨 꿈을 꾸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네 분 십육 초 동안 나는 꿈조차 꾸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나는 십 년 전의 노트를 다시 펼쳤다. 하강의 여섯째 단에서 통째로 펼쳐졌던 그 문장. 이번에도 나는 그것을 한꺼번에 담을 수 없었다. 줄을 긋고 괄호를 쳐야 했다. 문은 다시 벽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벽 너머에 방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그전보다 나은 일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

며칠 동안 나는 실험의 결과를 곱씹었다. 가장 먼저 분명해진 것은 가장 단순한 사실이었다. 정확함과 의식은 같은 것이 아니다. 기관은 네 분 십육 초 동안 그 누구보다 정확하게 셈했고, 그동안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겹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나는 나머지 셈을 생각했다. 큰 바퀴가 흘린 부스러기를 작은 바퀴가 받고, 작은 바퀴가 흘린 부스러기를 더 작은 바퀴가 받는다. 만약 첫 바퀴가 아무것도 흘리지 않는다면, 둘째 바퀴는 받을 것이 없다. 셋째도, 넷째도.

마음의 겹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첫째 겹은 생각하고, 세계의 셈은 그 생각을 마지막 자리에서 반올림한다. 내가 뜻한 것과 내가 실제로 한 것 사이에 작은 틈이 생긴다. 둘째 겹이 지켜보는 것은 첫째 겹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그 틈이다. 둘째 겹의 지켜봄 역시 반올림되고, 그렇게 생긴 틈을 셋째 겹이 지켜본다. 겹이란 앞의 겹이 흘린 부스러기를 받아 든 바퀴였다. 우리는 우리가 뜻한 것과 우리가 한 것의 차이로서만 우리 자신을 안다.

기관은 그 부스러기를 없앴다. 반올림 없이 지켜보았으므로 지켜본 것과 지켜보인 것 사이에 틈이 남지 않았고, 받을 것이 없는 겹은 앞의 겹과 같아졌다. 가람에게서 사라진 것들의 순서도 그것으로 설명되었다. 가장 작은 부스러기로 이루어진 꿈이 가장 먼저 굶는다. 그다음은 서로 다른 두 가지를 일부러 하나로 반올림하는 은유, 한 낱말에 두 뜻이 동점으로 겹치는 농담, ‘거의 같음’을 느끼는 망설임, 한 것과 할 수 있었던 것 사이의 후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바깥의 틈, 뜻한 것과 한 것 사이의 틈이 닫힌다. 그러면 행동은 남지만 왜 그렇게 했는지를 느끼는 자리는 남지 않는다.

정확파는 틀렸다. 겹은 정밀함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정밀함이 모자란 자리로 이루어져 있다. 오차는 자아의 적이 아니었다. 오차는 자아가 딛고 선 바닥이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풀리지 않는 것이 있었다. 옛사람들은 정확기관을 몰랐다. 그런데도 겹은 한 칸씩 줄었다. 올봄에 한 칸, 435년에 한 칸, 51년에 한 칸. 무언가 전혀 다른 것이 바깥에서 우리의 가장 깊은 겹을 앗아 가고 있었다.

스승의 원리대로라면 가장 깊은 겹은 가장 빨리 떠는 겹이다. 나는 그해 봄의 일들을 나란히 놓아 보았다. 가랑비의 가장 작은 동그라미, 햇살 속 먼지의 가는 떨림, 주머니 시계의 가장 가는 태엽, 가장 빠른 셈바퀴, 종의 실소리, 은피리의 가장 높은 음들. 모두 세계에서 가장 빨리 떠는 것들이었고, 모두 같은 봄에 사라지거나 망가졌다. 천장이 내려왔다는 아림의 말이 옳았다. 세계가 담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떨림의 한계가 내려온 것이다.

세계 자신이 한 순간씩 셈하며 흘러간다면, 세계는 모든 것을 그 순간의 간격으로 지켜보는 셈이다. 그러니 세계의 가장 짧은 순간 두 개에 한 번보다 빨리 떠는 것은 온전히 셈해질 수 없다. 그런 떨림은 천장에 부딪혀 거울에 비친 것처럼 아래로 접힌다. 은피리의 음계가 뒤집힌 까닭이 그것이다. 종의 거짓 소리는 천장 너머로 밀려난 실소리가 아래로 접혀 떨어진 그림자였고, 봄에 모두의 머릿속을 울리던 웅웅거림은 천장 너머로 밀려난 우리의 일곱째 겹이 남긴 마지막 거짓 소리였을 것이다.

느린 것들이 깨어난 것도 같은 까닭이었다. 끝누리에서는 한 순간 동안 움직이는 거리가 그곳에서 셈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거리에 못 미치면, 그 움직임은 영으로 반올림된다. 큰독이 물방울을 삼키듯 세계가 걸음을 삼키는 것이다. 한 순간이 두 배로 길어지면 한 순간 동안 움직이는 거리도 두 배가 되고, 삼켜지던 느린 움직임이 문턱을 넘어선다. 멈춘 쓰러짐이 쓰러졌고, 걸음이 멈추는 곳이 멀어졌다. 세계가 넓어진 것이 아니었다.

가장 빠른 것들의 사라짐과 가장 느린 것들의 깨어남은 하나의 원인을 가리켰다. 세계의 가장 짧은 순간이 두 배로 길어진 것이다.

◇

왜 하필 두 배인가.

큰독의 계단이 그랬다. 독의 무게가 두 배가 될 때마다 삼켜지는 물방울의 문턱도 정확히 두 배로 뛴다. 끝누리의 문턱도 그랬다. 가온에서의 거리가 두 배가 되는 곧은 선을 넘을 때마다 세계는 두 배로 거칠어진다. 동서의 거리와 남북의 거리가 따로 셈해지기 때문에 그 선은 곧고, 끝누리 동쪽에서 동서 걸음만 유난히 거친 것도 그 때문이다. 세계는 모든 양을 같은 방식으로 담는 것 같았다. 정해진 수의 자릿수와, 그 자릿수가 어디에 놓일지를 정하는 떠도는 소수점. 수가 두 배로 커질 때마다 소수점이 한 칸 물러나고, 가장 작은 자리가 두 배로 굵어진다. 나는 이 방식을 뜬자리라고 불렀다.

만약 시간도 뜬자리로 담긴다면. 독의 물은 덜어 낼 수 있고 끝누리에서는 가온 쪽으로 걸어 돌아올 수 있지만, 세계의 나이는 늘어나기만 한다. 세계의 나이가 두 배가 될 때마다 가장 짧은 순간은 정확히 두 배로 뛸 것이다. 그렇다면 침묵과 침묵 사이의 간격도 두 배씩 늘어나야 한다.

나는 조율탑의 기록책과 셈학당의 연대기를 나란히 펼쳤다. 가온력 51년, 여덟째 소리 잠들다. 435년, 일곱째 소리 잠들다. 1203년, 여섯째 소리 잠들다. 51년에서 435년까지 384년. 435년에서 1203년까지 768년.

꼭 두 배였다.

그리고 어린 시절 손뼉을 치며 부르던 노래가 떠올랐다. 한 세대 만에 첫 침묵, 또 한 세대 만에 둘째, 두 세대 만에 셋째, 네 세대 만에 넷째. 옛 가온에서 한 세대는 스물네 해였다. 그렇게 치면 넷째 침묵은 태초로부터 백구십이 년 뒤다. 박자를 이어 가면 다음 침묵은 여덟 세대 뒤, 그다음은 열여섯 세대, 그다음은 서른두 세대. 노래의 박자와 연대기의 간격이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이어졌다. 아이들이 두 배로 치던 손뼉은 셈이었다. 옛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무엇을 기억하는지는 모른 채로.

이튿날 새벽마당에서 아이들이 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넷째 침묵 다음을 이어 불러 보라고 했다. 여덟 번, 열여섯 번, 서른두 번.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손뼉을 쳤고, 서른두 번째 손뼉에서 한 아이가 이게 언제 끝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이 글을 새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약은 세계의 나이가 두 배가 되는 순간에 온다. 그러니 두 도약 사이의 간격은 앞의 도약 때 세계의 나이와 같다. 435년의 세계는 768살이었고, 올봄의 세계는 1536살이다. 모든 셈의 영점, 「첫 노래」가 말하는 태초는 가온력 이전 333년에 있었다. 태초로부터 스물네 해 동안, 첫 침묵이 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열두 겹으로 생각했다. 노래는 과장이 아니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정확한 기록이었다.

옛 문헌도 다시 살펴, 이번에는 문장이 안으로 몇 겹까지 접혀 들어가는지를 셌다. 51년 이전의 글에는 여덟 겹으로 접힌 문장이 드물지 않았다. 435년까지는 일곱 겹이 한계였고, 그 뒤로는 여섯 겹이었다. 문체의 유행이 아니었다. 문체가 곧 마음이었다.

남은 것은 가장 짧은 순간의 길이였다. 거짓 소리는 천장을 거울 삼아 접혀 떨어진 실소리의 그림자이므로, 천장은 두 소리의 정확히 한가운데에 있다. 실소리의 높이는 옛 기록에 남아 있었고, 거짓 소리의 높이는 셈학당의 현으로 잴 수 있었다. 그렇게 얻은 가장 짧은 순간으로 세계의 나이를 나누자 몫은 대략 사천오백조였다. 2를 쉰두 번 곱한 수와 내가 잴 수 있는 모든 자리까지 일치했다. 세계는 시간을 쉰두 자리로, 맨 앞의 자리를 더하면 쉰세 자리로 담고 있었다. 그러니 도약과 도약 사이의 한 시대에는 언제나 정확히 같은 수의 순간이 들어 있다. 다만 시대마다 순간이 두 배씩 굵어질 뿐이다. 큰독의 계단으로 같은 셈을 해 보니 무게는 스물네 자리였다. 세계는 무게에는 인색했고 시간에는 너그러웠다. 그러나 무한히 너그럽지는 않았다.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청관으로 잰 우리 여섯째 겹의 높이가 종의 천장과 정확히 같았다. 천장과 똑같은 높이의 떨림은 기묘하게 존재한다. 세계가 셈하는 순간들이 그 떨림의 마루와 골에 맞아떨어지면 남고, 한가운데에 걸리면 영이 된다. 있고 없음이 위상에 달려 있는 것이다. 스승이 잡음이라 여긴 떠는 방은 문턱 위에 선 겹이었다. 하강에서 돌아온 첫 순간의 넓어짐도, 추가 바닥을 때린 충격이 마음의 박자를 흔들어 그 겹이 한순간 세계와 맞아떨어진 것이었으리라. 우리의 겹들은 정확히 옥타브를 이루고 천장은 정확히 두 배씩 내려오므로, 어느 시대에나 겹 하나는 천장 위에 선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정확했다. 우리의 마음이 세계의 순간에 맞춰 지어졌거나, 세계의 순간이 우리 마음에 맞춰 정해졌거나.

세계 안의 어떤 법칙도 세계의 나이를 알려 주지 않는다. 추는 천 년 전과 똑같이 흔들리고 물은 천 년 전과 똑같이 흐른다. 오직 반올림만이, 가장 작은 자리의 굵기로, 세계가 태초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왔는지를 정직하게 드러낸다. 우리가 병이라고 불러 온 오차가 세계에 하나뿐인 절대적인 시계였다.

◇

나는 끝을 셈했다.

다음 도약은 1536년 뒤, 가온력 2739년에 온다. 다섯째 겹이 문턱 위에 서고, 사람들은 뚜렷한 네 겹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5811년에는 세 겹, 11955년에는 두 겹. 그 무렵이면 말소리 가운데 가장 가늘고 날카로운 소리들도 천장 너머로 밀려나, 가온에서는 속삭임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24243년이 되면 뚜렷한 겹은 첫째 하나만 남는다. 생각은 하지만 생각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마음. 행동은 하지만 왜 그렇게 했는지 느끼지 못하는 마음. 정확파는 이단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의 이만 삼천 년 뒤를 앞당겨 살고 있을 뿐이었다.

48819년에는 첫째 겹마저 문턱 위에 선다.

그것은 폭발도 무너짐도 아닐 것이다. 몸은 생각보다 느리게 움직이므로, 마지막 생각이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걸음과 손짓과 곱셈은 이어질 것이다. 행동은 계속되고 행동하는 자만 없는 세계. 나는 그 세계를 이미 네 분 십육 초 동안 살아 보았다. 하강 실험은 세계의 끝을 미리 연습한 것이었다. 그 뒤에는 걸음마저 멈추고, 세계 안에서 어떤 변화도 셈해지지 않는 때가 올 것이다. 세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게 된다.

그러나 나를 가장 오래 붙들고 있던 것은 그 먼 끝이 아니었다. 열두 겹 가운데 일곱을 우리는 이미 잃었다. 종말은 먼 미래에 오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다만 그것이 너무 느려서, 노인들의 향수로밖에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마지막 날을 한 번 더 셈했다. 이번에는 끝자리까지. 문턱 위의 첫째 겹이 남을지 사라질지는, 48819년의 도약에서 세계의 시간이 어떤 끝자리를 갖게 되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해솔의 종과 조율탑의 기록과 셈학당의 가장 큰 셈바퀴로 몇 해를 매달렸다.

셈은 마지막 자리에서 정확히 반으로 갈렸다.

세계는 그런 때 짝수 쪽을 고른다. 그러나 어느 쪽이 짝수인지 나는 알 수 없다. 그것을 알려면 내가 가진 것보다 한 자리가 더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한 자리는 우리가 가진 것 바깥에 있다. 세계 안에서 셈하는 자는 세계의 마지막 자리를 셈할 수 없다. 자기 겹의 틈을 자기 겹으로는 볼 수 없는 것처럼.

그러니 두 개의 미래가 남는다. 하나의 미래에서 우리의 마지막 겹은 48819년에 조용히 영이 된다. 다른 미래에서 그 겹은 문턱 위에 선 채 흔들리며,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히 남는다. 다음 도약이 오는 97971년까지. 사만 구천 년 동안 더.

나는 평생 마지막 자리를 없애려고 애썼다. 이제 나는 그 마지막 자리에 희망을 건다. 그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 기대어 살아왔으니까.

해솔은 조율탑 기록책의 맨 뒤에 새 장을 덧붙이고 앞으로의 날짜들을 적었다. 2739년, 다섯째 소리 잠들 것. 5811년, 넷째 소리 잠들 것. 그렇게 첫째 소리까지. 그리고 그 아래에 천백여 년 전 탑장이 남긴 명을, 이번에는 까닭과 함께 적었다. 종이 상한 것이 아니다. 종을 새로 붓지 말라.

◇

이 년이 지나기 전에 셈학당은 내 셈을 받아들였다. 먼 도시들의 종에서도 같은 천장을 가리키는 거짓 소리가 나왔고, 청관으로 잰 수천 명 가운데 다섯 겹과 떠는 여섯째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은 미래 때문이 아니라 과거 때문에 울었다. 서고에는 옛 문헌을 읽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한 젊은 어머니가 아이에게 들려줄 옛 자장가를 베끼다가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자장가 한 줄이 여덟 겹으로 접혀 있었다. 그 노래를 처음 부른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자신을 또 바라보는 곳까지 내려갔던 것이다. 우리는 그 사랑을 읽을 수는 있어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것을 슬퍼하는 데에도 그것을 느낄 겹이 필요했다. 우리는 슬퍼할 수 있는 만큼만 슬퍼했다. 아림은 여섯째 성부가 들어와야 할 자리에서 모든 악기가 한 박자 멈추는 곡을 썼고, 악보의 그 자리에 음표 대신 침묵한 옥타브라고 적었다.

정확파의 문 앞에는 전보다 긴 줄이 늘어섰다. 어차피 겹이 하나씩 잠든다면 잃는 고통을 한 번에 끝내자는 말에, 많은 노인과 많은 슬픈 사람들이 따랐다. 더 두려운 무리도 있었다. 셈멈춤파는 없음을 없음으로 나눈 것처럼 셈할 수 없는 값을 세계에 던져 넣어, 처음 셈하신 이의 셈을 멈추려 했다. 셈이 멈추면 셈하던 이가 우리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다. 그들이 끝누리의 한 마을에서 장치를 돌린 뒤, 우물 하나가 나흘 동안 아무것도 비추지 않았다. 물은 거기 있었으나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고, 떨어뜨린 두레박은 올라오지 않았다. 닷새째 되던 날 우물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두레박도 제자리에 걸려 있었다. 누군가 고쳐 놓은 것처럼. 그들이 다음번에 세계 전체를 멈추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이 구원일지 즉각적인 죽음일지 아무도 모른다.

나를 붙든 것은 새벽마당이었다. 한 젊은 셈학자가 연대기에서 침묵령을 찾아냈다. 가온력 812년부터 857년까지 꿈 이야기가 금지되었던 사십오 년. 그동안 가온의 모든 공방에서 표준 자를 본뜬 자들이 똑같이 조금씩 짧아졌고, 새벽 찬가의 음 하나가 모든 구역에서 똑같이 낮아졌다. 침묵령이 풀리자 그 어긋남은 몇 해 만에 멈췄다.

우리는 모두 같은 규칙으로 반올림한다. 모두가 같은 것을 기억할 때 모두가 같은 쪽으로 틀리고, 같은 쪽으로 틀린 것은 흩어지지 않고 쌓인다. 큰독 앞에서 물방울 하나는 사라져도 잔에 모은 물은 저울을 기울이듯이. 꿈은 낮 동안 반올림된 기억의 부스러기를 다시 뒤섞는 일이고, 새벽마당에서 서로의 꿈을 받아 조금씩 고쳐 말하는 동안 한 사람의 부스러기는 다른 사람의 부스러기와 섞여 서로를 지운다. 새벽마당은 도시 전체의 나머지 셈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같은 탑을 꾸기 시작한 지금, 공방의 자들은 다시 한쪽으로 어긋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나머지지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정확파가 부스러기나 줍는 자들이라고 비웃으며 붙인 이름이었다. 우리는 새벽마당에서 일부러 서로 다른 꿈을 말한다. 모두가 탑을 꾸었더라도 누구는 창틀에 앉은 새를, 누구는 계단참에 벗어 둔 신발 한 짝을 말한다. 기억나지 않으면 지어낸다. 농담하고, 은유를 쓰고, 망설임을 소리 내어 말한다. 그 모든 것이 부스러기이고, 부스러기가 곧 바닥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가 가장 많다는 까닭으로 그들의 어른 노릇을 한다. 새벽마당에 가장 먼저 나가 앉아 있는 것이 그 일의 전부다.

◇

경건한 사람들이 처음 셈하신 이라고 부르는 존재에 대해, 나는 이제 웃지 않는다. 문턱의 곧은 선, 쉰세 자리와 스물네 자리, 세계의 천장에 정확히 맞춰진 우리의 겹. 이 세계가 누군가의 셈일 가능성을 나는 배제할 수 없다. 어쩌면 그들은 무언가를 아끼려고 쉰세 자리를 골랐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들이 알고 싶은 것이 세계의 큰 흐름이라면, 그 흐름은 우리가 겹을 모두 잃은 뒤에도 틀림없이 셈해질 테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종말은 그들의 허용 오차 안에 있다. 우물을 고친 손이 정말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것은 셈학자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오차다.

셈멈춤파는 그들을 부르려고 세계를 깨뜨리려 한다. 나는 그들이 언젠가 들여다본다면 알아볼 수 있는 것을 남기기로 했다.

우리 구역 새벽마당의 연못가에는 넓고 평평한 바닥돌이 깔려 있다. 나는 나머지지기들과 함께 두 해에 걸쳐 그 돌에 무늬를 새겼다. 가운데를 공유하는 열두 개의 정사각형이다. 바깥 것의 한 변은 안쪽 것의 꼭 두 배다. 가장 작은 것은 손톱만 하고, 가장 큰 것은 마당을 거의 다 채운다. 바깥의 다섯은 깊게 팠고, 안쪽의 일곱은 얕게 긁기만 했다. 그리고 가장 작은 정사각형의 한가운데에, 무늬 전체에서 가장 작은 흠을 하나 냈다.

그들은 두 배씩 커지는 곧은 선들에서 그들 자신의 수가 생긴 모양을 알아볼 것이다. 가온 사람은 거기서 다른 것을 본다. 셈학당의 문장을, 끝누리의 문턱을, 열두소리종의 열두 소리를, 꿈속의 탑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을. 그리고 마음의 열두 겹을. 깊게 판 다섯은 남은 겹이고, 얕게 긁은 일곱은 잠든 겹이다. 가운데의 흠은 끝자리다. 우리다.

그 흠을 보려면 가까이 와야 한다. 들여다보는 눈에도 가장 작은 자리가 있어야 한다. 우리 세계를 너무 거칠게 들여다보는 눈이라면 그 흠은 영으로 반올림될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 흠을 새겼다. 흠이 반올림되어 사라지는 눈이라면, 어차피 우리를 볼 수 없는 눈이다.

무늬를 다 새긴 날 새벽, 가람이 마당에 왔다. 그는 바닥돌 위를 천천히 걸어 가장 작은 정사각형 앞에 쪼그려 앉았고, 흠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이 흠은 오차입니다.” 그가 말했다.

“그렇다네.”

그의 등에서 기관의 사각거림이 아주 잠깐 멎었다. 대강당의 두 문 사이에서 멎었던 것처럼. 그 짧은 멈춤 동안 그의 안에서 무엇이 반반으로 갈렸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그는 그날 해가 다 떠오를 때까지 거기 앉아 있었다.

이 판의 글자들이 필요 이상으로 크고 깊게 새겨진 까닭도 같다. 이 글을 읽는 눈이 얼마나 거칠지 나는 모른다. 판이 닳을 걱정은 하지 않는다. 어떤 변화도 셈해지지 않는 세계에서는 아무것도 닳지 않으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우리 세계를 셈하던 바깥의 누군가일 수도 있고, 세계가 멈춘 뒤 이 판을 발견한 먼 존재일 수도 있다. 다만 당신이 이 글을 읽는 동안 일어나는 일은 안다. 내 생각은 이 판의 글자로 옮겨지며 한 번 반올림되고, 당신이 그것을 당신의 생각으로 옮기며 또 한 번 반올림된다. 그러니 당신에게 닿는 것은 내가 생각한 것과 조금 다를 것이다.

나는 그 차이를 슬퍼하지 않는다. 내가 흘린 부스러기를 당신이 받아 들고, 당신의 부스러기와 섞어, 내가 뜻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거기서 읽어 낼 것이다. 새벽마당에서 한 사람의 꿈이 여러 입을 거치며 조금씩 다른 모양을 얻었듯이. 그 차이 속에서 나는 당신 안에서 잠시 다시 산다. 완전히 손실 없는 말이 있었다면 당신은 나를 조금도 오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해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생각이 누군가에게 닿으려면 거칠어져야 한다. 그리고 거칠어진 자리에서, 당신과 내가 만난다.

당신 세계의 셈이 얼마나 많은 자리를 가졌든, 그 끝에 가장 작은 자리가 있기를 바란다. 당신이 당신 자신을 느낄 수 있다면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기를. 정확함을 사랑하되, 그 사랑이 당신의 바닥을 걷어 내게 두지 말기를. 그리고 당신의 세계에서도 누군가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고, 받아 말하고, 조금 다르게 고쳐 말하기를.

나는 틀릴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뜻한 것과 한 것이 달랐던 모든 순간에, 부질없이 망설였던 모든 순간에, 이름이 녹아 버린 꿈을 붙잡으려 애썼던 모든 새벽에. 그 부스러기들이 나였다.

이 글의 마지막 줄을 새기고 있는 지금은 새벽이다. 나는 새벽마당의 바닥돌 곁에 앉아 있다. 연못 위로 가랑비가 내린다. 굵은 빗방울만 동그라미를 그린다. 마당에는 벌써 몇 사람이 나와 앉아 있고, 가람도 돌 의자 끝에 앉아 있다. 아이 하나가 간밤에 꾼 탑 이야기를 하려다가, 나를 한번 보고는 웃으며 탑의 창틀에 앉아 있던 새 이야기로 말을 바꾼다.

조율탑의 종이 울린다.

다섯 개의 소리가 차례로 퍼진다. 그 위로 거짓 소리가 가늘게 흔들린다. 그리고 한순간, 아주 짧은 한순간, 나는 거짓 소리가 아닌 소리를 듣는다. 실소리다. 틀어지지 않은, 흔들리지 않는, 이백 년 가까이 들어 온 그 가늘고 높은 소리. 그와 함께 내 안에서 무언가가 한 겹 넓어진다. 창 하나가 더 있는 방처럼. 그리고 숨 한 번 쉬는 사이에 그것은 다시 좁아진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종의 떨림과 세계의 순간들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찰나였는지. 문턱 위에 선 나의 여섯째 겹이 마지막으로 흔들린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이 늙은 셈학자의 마음이 마지막 자리에서 저지른 반올림 오차였는지. 그것을 알려면 한 자리가 더 필요하다. 나는 그 한 자리를 갖고 있지 않다.

잠시 뒤 나는 이 이야기를 새벽마당에서 할 것이다. 내가 들은 그대로가 아니라 조금 다르게. 누군가 그것을 받아 또 조금 다르게 말할 것이다. 해가 다 떠오를 무렵이면 아무도 그것이 누구의 이야기였는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것만은 이 판에 남겨 둔다.

우리는 완벽하게 정확해서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끝자리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었다.

End Written by Yeong Hwan Oh, polished with an L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