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선내 시간 00:00
“관제, 여기는 PLANCK-1. 진입 삼십 초 전.”
“PLANCK-1, 관제. 사차원 벡터 확인. 전 항목 정상.”
나는 콘솔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있다. 긴장하면 늘 이렇다. 사관학교 잔디밭에서 하늘을 올려다볼 때도, 자격시험 문제지를 받아 들었을 때도, 손가락은 제멋대로 박자를 탄다.
“PLANCK-1. 손가락.”
“뭐.”
“마이크에 다 들어간다.”
“싫은데.”
잡음 너머로 네가 웃는다. 한숨이었을지도 모른다. 너는 그 두 가지를 잘 구분해서 내지 않는 사람이니까.
“진입 십 초 전.”
창밖의 별들이 휘기 시작한다. 시공간은 연체동물 같다고, 언젠가 벤치에서 너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막상 그 속으로 들어와 보니 틀린 비유다. 연체동물은 적어도 제 몸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는 안다.
“…기다릴게.”
카운트다운 사이에 끼어든 그 말은 교신 규정에 없는 문장이다. 나는 웃는다.
“기다리긴 뭘 기다려. 늦으면 찾으러 와.”
대답은 오지 않는다. 대답 대신 잡음이 오고, 잡음 대신 아무것도 오지 않는다.
그다음은 설명할 수가 없다. 앞이 옆이 되고, 옆이 어제가 된다. 몸이 한 번 뒤집혔다가, 뒤집힌 줄도 모르게 제자리로 돌아온다. 배 전체가 길게 비명을 지른다. 나는 조종간을 놓지 않는다. 놓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눈을 뜨자 경보가 울리고 있다.
“현재 시공간 좌표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배의 인공지능이 같은 문장을 세 번째로 되풀이한다. 목소리가 쓸데없이 차분해서 조금 얄밉다. 계기판의 절반은 꺼져 있고, 나머지 절반은 빨갛다. 선체 어딘가에 금이 갔는지 기압이 조금씩 새어 나가고 있다. 나는 헬멧 바이저를 내리고 우주복을 밀봉한다. 생명 유지 장치가 돌기 시작하고, 헬멧 안쪽에 숫자가 뜬다.
47:59:58.
마흔여덟 시간. 표준 우주복이 줄 수 있는 전부다.
나는 인공지능에게 손상 보고를 시킨다. 주 전력 계통 소실. 항법 컴퓨터 부분 작동. 선체 균열 두 곳. 추진기 응답 없음. 목록이 길어질수록 목소리는 더 차분해진다. 나는 중간에 끊는다. 알 만큼 알았다.
양자 통신 모듈에는 빨간 불이 하나 켜져 있다. 결맞음 붕괴, 즉시 송신 불가. 지구와 나를 한순간에 이어 주기로 되어 있던 그 비싼 장치는, 이제 켰다 껐다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남은 건 백업 전파뿐이다. 잔여 전력으로 보낼 수 있는 용량이 화면 구석에 떠 있다.
13바이트.
창밖으로 별빛이 들어온다. 스펙트럼을 대충 재 보니 전부 푸른 쪽으로 밀려 있다. 이곳의 시간이 바깥보다 만 배 넘게 느리다는 뜻이다. 여기서의 일 분이 거기서는 아흐레쯤 된다. 내가 숨을 한 번 쉬는 동안, 너는 하룻밤을 보낸다.
배는 아주 천천히, 아래로 미끄러지고 있다. 이곳에 아래라는 게 있다면.
추진기가 살아 있었다면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살아 있지 않다. 나는 깊이 계기의 숫자가 아주 조금씩 불어나는 것을 한참 들여다본다. 숫자가 불어날수록 내 시간은 더 느려지고, 너와 나 사이는 거리가 아니라 시간으로 벌어질 것이다.
좌표 없는 구조 신호는 받는 사람만 괴롭힌다. 그 사람들은 합리적이니까, 계산을 돌려 보고, 불가능하다는 걸 확인하고, 아주 정중한 이메일을 한 통 쓸 것이다. 그 사람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불가능 앞에서 멈추지 않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도서관 창가에 앉아 나를 훔쳐보면서, 나를 이기겠다고 밤새 책장을 넘기던 사람.
무엇을 보낼지는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 고민할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숙소로 돌아가던 그 길에서 나는 이미 그 말을 해 두었다. 그때는 이렇게 쓰게 될 줄 몰랐을 뿐이다.
나는 영어로 문장을 하나 쓴다. 관사를 버린다. 옛날 전보문처럼. 모음을 버리고, 와이도 버린다. 남은 글자를 센다.
열셋.
너라면 읽는다.
송신. 전력 표시가 바닥에 닿는다.
이제 양자 모듈이 남았다. 말은 못 해도, 깜빡일 수는 있다. 좌표 대신 보낼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나는 수동 설정 화면을 열고, 장갑 낀 손가락으로 숫자를 누른다. 머리보다 손끝이 먼저 아는 숫자다.
1.3373.
모듈의 불빛이 깜빡이기 시작한다. 켜지고, 꺼지고, 다시 켜진다.
나는 창밖을 본다. 까맣다. 아무것도 없다. 적어도 그렇게 보인다.
선실이 조용하다. 경보도 이제는 지쳤는지 울지 않는다. 들리는 건 헬멧 안의 내 숨소리와, 계기판 어딘가에서 금속이 식어 가며 내는 가느다란 소리뿐이다.
우주에 빈 공간은 없다고, 크리스마스 전날 밤 너에게 그렇게 말했다. 말하기는 쉬웠다. 이제 그 말이 맞다는 걸 증명할 차례다. 내가 아니라, 네가.
나는 불빛에 맞춰 무릎을 두드린다. 잔디밭에서 그랬던 것처럼.
찾으러 와. 늦어도 괜찮으니까.
1. 너의 울림
그날따라 바람이 쌀쌀했다. 너는 잘 떠났을까, 아무것도 없는 공간 속에서 길을 잃지는 않았을까. 내 머릿속은 온전히 너로만 가득 찼고, 일상적으로 매일 하던 일도 이상하게 잘 되지 않았다. 그냥 피곤한 건가, 아니면 이미 너를 사실상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힘들어진 것인가. 사실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나는 잠이 필요했다. 숙소로 들어가던 와중에도, 너와 함께했던 시간과 공간들이 자꾸 떠올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술에 절어 있는 상태로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래도, 피곤한 건 맞았나 보다.
내가 사관학교의 생도였던 시절, 너를 처음 만났었다. 나는 조종사의 꿈을 품고, 항상 열심히 노력을 하여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의 콧대를 꺾어 주고는 했지만, 너는 내가 영원히 바라봐야 할 대상이었다. 너는 조종 특기에서 시험을 쳤다 하면 1등을 거머쥐었지만, 너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이상을 항상 바라보았으니까. 그래도 노력으로 비벼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면 너를 경쟁 상대로만 생각했겠지만, 너는 무엇인가 달랐다. 항상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있던 나와는 달리, 너는 항상 바깥에서 여유로운 자세로 허공만 올려다보고 있었거든. 호기심이 발동했던 나는 너를 계속 멀리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보니까 진짜로 수업시간 말고는 공부를 안 하는 것 같더라. 그런데도 모든 시험에서 모든 문제를 맞히는 너를 보니, 내가 했던 소위 말해 ‘피나는 노력’이라고 지칭했던 것들이 압도적인 재능 앞에서는 아무 쓸모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도 나름 고등학교 때까지는 똑똑하다고 자부했었는데 말이다.
하루는, 매일 똑같이 먼발치에서 너를 지켜보고 있다가, 도대체 저 멀리서 허공을 바라보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었다.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알고 싶었던 갈망이 너무 컸던 나머지, 네 앞에 있던 순간에는 말이 잘 나오지도 않더라. 그런데도, 너는 친절히 나에게 옆에 앉으라고 했고, 내가 물어봤던 것들 이상으로 자신에 대해 얘기를 했던 게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사실, 네가 항상 나를 바라보고 있던 것쯤은 꽤 오래전에 알고 있었어. 그리고, 네가 내 성적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 옆구리에 책을 끼고 서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어떻게 무시하겠니. 그래도, 네가 이렇게 궁금해하니까 알려 줄게. 나는 비행기에 타고 싶지 않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사는 삼차원 공간 너머 또 다른 곳을 정복하고 싶은 거지. 누가 말했잖아. 시공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똑바르게 굳어 있는 게 아니고 연체동물마냥 계속 불규칙적인 움직임을 보인다고. 굳이 있는 삼차원 공간을 이동하는 것보다 복잡하고 유동적인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 더 재밌지 않겠어?”
솔직히, 나는 네가 이야기하는 내용 중에서 반도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그 말을 하면서 네가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었다. 그 이후, 너는 NASA라느니, 비표준 시공간 여행이라느니,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말들을 내 앞에서 하고 있었고, 그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너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었다. 나는 너를 동경하였고, 너의 발끝이라도 따라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너와 같은 길을 걸을 작정으로, 지금 사관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동시에 물리학-보통 현대적인 시공간 항법에 관한 것들-을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우리는 같이 전역하여 같은 대학교에서 석박 통합 과정을 같이 했으며, 마침내 네가 말한 대로 NASA의 정식 연구원이 되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움직였던 것일까.
무엇이 너를 따라가라고, 그 길만이 네가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했었던 것일까.
항상 생각하고 다녔던 내용이지만, 너는 별에 가까운 존재였다는 것이 내 결론이었다. 네 중력은 너무 커서 가까이 있던 나를 계속 끌어당기고 있었던 것 같다. 네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사상, 생각, 그리고 습관들마저도. 나는 너에게 최대한 맞춰 가고 있었고 우린 닮아 가고 있었다.
몇 달 후, NASA에서 내부적으로 직원들의 일을 배분하여 일련의 인사이동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웜홀 너머를 탐사하는 프로젝트의 일부로서 PLANCK-1 복합다차원항법선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는 영예를 가지게 되었고, 우리는 뛸 듯이 좋아했다.
하지만,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 아주 큰 중력을 가진 것이 무엇인가를 끌어당긴다면, 충돌하는 것 정도는 예측을 했어야 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비표준 시공간에 대한 전문가가 두 명 필요했다. 한 명은 조종사, 다른 한 명은 지구에 남아 있는 항법 관제사로서 말이다. 이 두 직종은 서로 간의 면밀한 피드백을 필요로 하였고, 우리가 서로를 조금만 더 사랑했다면 이 자리를 우리에게 딱 맞는 두 자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감정은 그것보다는 확실히 조금 얕았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 통보를 듣고, 우리는 1분간 서로 말이 없었다. 나는 조종사를 원했고, 그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조용히 방을 나가, 옥상에 올라갔다. 담배를 한 대 꺼내고, 불을 붙였다. 바람이 불던 탓에, 불도 잘 붙지 않았다.
맙소사. 왜 완벽한 순간에 이런 일이 있을까.
둘 다 조종사가 되었으면 안 되었던 걸까.
나는 충분히 자격적으로 증명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내 노력이 부족했던 걸까.
내 꿈을 단번에 채갈 만큼의 권한이 그들에게 있었던 것일까.
너의 얼굴이 생각난다.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애를 썼지만, 웬만해서는 지워지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있는 가상의 너에게 욕도 실컷 퍼붓고 울분을 토해냈다. 물론 속으로, 왜 이런 선택을 강제해야 되었냐며, 왜 내 꿈을 두고 너와 경쟁하게 되었냐며. 하지만, 상상 속의 너는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다시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몇백 번도 더 봐왔던 모습이었다.
그랬다.
조종사는 나의 꿈이 아니었다. 너의 꿈이었지.
나는 너에게 매료되어 너와 닮고 최대한 다가가는 과정에서, 너와 나를 동일시했던 거야. 그 과정에서 나는 너에게 너무나 끌린 나머지 너와 충돌하는 지금까지 이르렀던 것이었어. 나는 너의 위성이고, 너의 찬란한 빛을 받는 것만으로 충분한데 말이지. 그래, 나는 조종사가 될 필요가 처음부터 없었어.
너의 얼굴을 보았다.
이번에는 내 상상 속이 아니라 진짜였지만.
“왜 그랬어? 너도 조종사 하고 싶었잖아. 우리 같이 공부했잖아, 조종사 되겠다고. 왜 그 기회를 혼자서 내쳐버린 건데?”
“포기한 거 아냐. 우리는 같은 조종 특기였고, 같이 비표준 시공간에 대해서 공부한 것은 맞지. 하지만, 그것은 그저 네가 그것들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야. 나는 너의 자취를 따라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고, 그만큼 가치가 있던 너였기에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던 거라고. 당연히, 나보다는 네가 더 조종사가 되고 싶었겠지. 나는 네가 그릴, 그리고 이미 그렸던 자취를 인도해 주는 역할만 해도 충분해. 항상 나는 네 길 근처에 있었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나를 위해 네 꿈을 포기한다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너는 나에게 울분을 터뜨렸다. 너는 실컷 울고, 나에게 기댔다. 작은 숨소리가 여기까지 엉겨 붙는 듯했다. 물론, 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이런 식으로 길이 달라질지는 몰랐겠지. 그래도, 나는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임을 이미 알고 있기에.
각자의 역할에 맞춘 훈련은 계속되었다. 나는 관제 일을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했고, 유동적인 시공간 사이에서 길을 밝혀 주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일임을 깨달았다. 시뮬레이션 상 보이는 시야에서, 어떤 사차원 벡터 방향으로도 한 걸음 내딛는 것은 순간적으로 막대한 계산이 필요했으니, 옆에 인공지능 한두 개쯤 끼고 계산하려고 해도 지연 시간이 상당했다. 그래도, 많이 반복하니까 나 자신 쪽의 지연 시간을 줄여 항해를 그럭저럭 해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점점 이 일에 적응되었던 차에, 우리 앞에 계속 있었지만 못 본 척했던 문제가, 우리를 다시 들쑤셨다.
웜홀은 적절한 때의 적절한 시공간 좌표에서 ‘발견’된다. 그러니까, 정해진 시간에 어디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 과학자들이 예측한 특정 위치에서 웜홀이 발견되어야만 출발이 가능한 것이다. 한술 더 떠, 웜홀이 비표준 시공간 내에서 안정적으로 그 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24시간 30분. 우리는 매우 극단적인 5분 대기조나 다름없었다.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만 하고, 24시간 내에 출발할 채비를 모두 갖춘 상태로 생활해야 했다.
그 언제였더라, 크리스마스 전날이었던가. NASA에서 하루 휴가를 내 주었다. 언제 출발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번쯤은 둘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는 뜻이겠지. 너는 나와 하루 종일 같이 있었다. 그날만큼은 아무도 우주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즐거운 시간을 망치기는 싫었던 것이리라. 서로 복잡한-그리고 대칭적인- 마음을 속에 담아 두고, 하루의 끝이 되어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너를 바라보았는데,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엇인가 말하고 싶었던 표정이었다. 내가 너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너는 무엇인가를 말하듯이 입술을 달싹였다. 심호흡을 내쉬고, 너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우주에 빈 공간은 없어. 존재가 있으면 그 주변은 장으로 가득 차지. 중력장이든 전자기장이든 뭐든지 말이야. 존재가 진동하게 되면, 주변에 있는 장이 그 존재의 진동을 우주 구석구석까지 빛의 속도로 전달해. 이것이 온 우주에 퍼지면, 우주 구석구석에 있는 모든 존재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거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말이야.”
“그렇지…”
“그러니까… 내가 여기가 아니고 다른 데 있더라도, 나는 너와 함께 있는 것과 마찬가지야. 나라는 존재를 증명해 주는 장이 너에게 언젠가는 닿기 마련이니까.”
우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곧 있을, 아니 어쩌면 내일 있을지도 모를 이별의 생각이 진하게 났던 것일까. 아니면, 네가 한 말을 소화시키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던 것일까. 어느 쪽이든, 그 이후의 결과가 긴 침묵이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다음 날이 되자, 자연히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웜홀의 위치가 발견되었다. 출발 시간은 24시간 30분 후로 당겨졌다.
지금 생각해 본다면, 웜홀 위치 발견에서부터 네가 떠날 때까지의 일련의 과정은 자세히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거의 잠을 자지도 않고, 숨 가쁘게 계속 비상대기 상태로 움직였으니까. 아니면, 그저 너를 떠나보내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절망감에 기억이 일시적으로 지워진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나는 것은 그저, 네가 탄 우주선을 성공적으로 웜홀 근처로 태워 보냈다는 결과뿐이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사실상 모두 끝났다. 우주선이 웜홀 안으로 들어가면, 빛으로도 3개월이나 걸리는 점프 포인트로 나오는데, 내가 하는 일은 관측 데이터를 분석하면 되는 것뿐이니까. 이제, 너에게서 받을 것이라고는 관측 데이터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관측 데이터를 제때 제때 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직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원래 우주선이 웜홀을 통과해 점프 포인트로 도달하면, 우주선의 인공지능이 자신의 시공간 좌표를 인지해 자동으로 초기 관측 데이터를 거의 즉시 송신해야 한다. 우주선의 메시지 송신은 전파를 이용하지 않는다. 메시지를 한 번 주고받는 데 6개월이 걸리는 통신 기능은 이제 과거의 기술일 뿐이다. 대신, 양자 통신 모듈이 존재해, 양자 결맞음을 통해 메시지를 즉시 전달할 수 있다. 제대로 통신이 이루어졌다면, 통신 장비를 가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초도 걸리지 않으니 일반 상대론적 효과를 고려하여 점프 직후 24시간 이내에 메시지를 수신해야 한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도, 일주일이 지나도,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우주선이 웜홀 속에서 완전히 길을 잃어 부서지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너의 메시지를 받기 위해서는 백업 전파 통신 방식밖에 사용할 수 없었고,
빛의 속도로도 3개월을 가야 하는 먼 거리에,
똑같이 3개월이 지나야 너의 이야기를 끝내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생도 시절, 훈련 기간이 3개월이었다. 웬만해서는 시간이 전혀 지나가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매일매일이 훈련인 데다가, 조종 특기를 받기 위한 시험공부까지 병행해야 했으니, 체감상으로는 1년이 넘게 흘렀었던 것 같다. 너의 메시지를 받기 위해 기다렸던 기간인 3개월은 훈련 기간인 3개월보다 훨씬 길었다. 초거대질량 블랙홀 옆에 있다가 오더라도, 그 정도의 시간은 흐르지 않았을 것이다. 매일매일, 내 머릿속 뉴런들은 너로 칠해지고 있었고 내 꿈들은 항상 너로 가득 차 있었다.
하루는, 꿈에 네가 되게 생생하게 나왔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너를 불러 보고 안아 보려고도 하고 너를 잡아두기 위해 별 짓을 다 했지만, 너는 항상 그랬듯 사라졌다.
지옥 같은 3개월이 지나고,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는 날이 되었다. 나는 통제실에 예상 시간보다 4시간 빨리 도착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내 주변에서 위로의 감정이 섞인 말을 해주고 있었다. 물론, 내 귀에는 당연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너와 네 잠재적 메시지만 존재했으니까.
메시지의 예상 도착 시간 범위에 나의 시간이 자리했고, 곧 메시지를 포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도착한 메시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었다.
“FNDFLDGNRTDBM”
13바이트의, 그것도 이진 통신 채널을 통한 메시지. 그 외의 정보는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여긴 뭐가 있고 크루의 상태는 어떠며, 그런 시시콜콜한 50장짜리 보고서가 나왔어야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메시지 전송 중 오류겠지, 그냥 잘못 보낸 것이겠지. 내 대뇌는 계속 현실을 부정하는 의견만 생성하고 있었다. 멍하니 있던 중에, 메시지 분석 결과가 나왔다. 메시지는 온전히 전달되었다. 일부가 끊긴 것이 아닌, 그 13바이트가 전부였던 것이다.
데이터 분석 팀이 꾸려져, 저 메시지의 뜻을 알기 위하여 언성을 높이고 있을 때,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저 메시지는 모음을 모두 지운 하나의 문장이었고, 우리가 크리스마스에 헤어지기 전날 했던 말 그대로를 담고 있었다.
“내가 만들어 낸 장을 찾아줘”… 이런 뜻이었으리라.
왜, 너는 구조 신호를 보내지 않고, 나와 네가 아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보낸 걸까. 너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길래, 나만이 너를 찾으러 갈 수 있는 걸까.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나는 입씨름을 하고 있는 사람들 앞으로 가 그 메시지가 무슨 뜻인지를 그들에게 설명했다. 지금까지 나에게 일어난 빌어먹을 일들로 인하여, 꽤 높은 준위의 흥분을 동반한 설명이 끝이 나자, 그들은 놀람과 동정이 컨볼루션-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침묵했다. 오랜만에 너를 생각하며 기억을 되찾자, 뭐라 할 수 없는 감정의 응어리가 깊은 곳에서부터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지나친 감상에 빠져 있을 때쯤, 국장이 말했다.
“좋은 소식인 것 같구만. 자네의 사정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웜홀을 무사히 통과했다는 말이 아닌가. 어차피 저 너머에는 이곳보다 시간이 꽤 느리게 가기 때문에, 우주선의 정확한 좌표만 안다면 그녀를 구하러 갈 수 있네. 하지만…”
나는 ‘그녀를 구하러 갈 수 있다’는 문장 하나에 반응하여, 사시나무같이 몸을 떨었다. 생각해 보니 맞다. 내가 완전히 잊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다. 상대론적 효과였다. 내가 폐인같이 너를 몇 개월 동안 그리워하고 있을 때, 네 우주선에서는 10분 남짓의 시간만이 흘렀다. 네가 입고 있을 나사 표준 우주복은 최대 48시간 분량의 산소와 생명 유지 장치가 존재했다. 그러니까, 대충 계산해 봐도 너는 지구 시간 기준으로 72년 정도를 더 살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면 새로운 우주선을 다시 설계해 너를 구하러 가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국장이 이어 말했다.
“…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자네도 알겠지만 웜홀 너머의 그녀의 위치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네. 주제넘게 참여해서 미안하다만, 이제 그녀를 놓아주는 것은 어떤가?”
생각의 속도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돌아왔다. 숨이 거칠게 내쉬어졌고, 이성은 조금씩 나를 떠나고 있었다. 하지만, 냉철해야 한다. 사실, 국장의 말이 맞다. 너를 찾는 것은 그냥 불가능한 일이다. 웜홀 너머 낯선 심우주에서, 어딘가 떠다니고 있을 너를 찾는 것은 기적이 없는 한 불가능하다.
그래도, 너인데, 너를 찾아야 하는데, 국장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여러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오려 했지만, 너무 많은 감정을 한 순간에 모두 소모해 버려서인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나는 뒤로 돌아 통제실 문을 박차고 나왔다.
나는 밤길을 걸으며, 너의 마지막 메시지를 곱씹었다. 잊고 있었던 너의 울림이 다시 시작되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입에서 쓴맛이 느껴졌다. 순간, 숨이 잠시 멈추었고, 나의 뇌에 너로 가득 찬 정보의 파노라마가 가득 찼다. 너의 말, 표정, 그리고 너를 안았던 감촉까지.
어떤 방법으로도 다시 만날 수 없는 너와의 감각이, 그때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너를 대체할 사람은 없다. 너는 정말 완벽하다. 너의 꿈이 곧 나의 꿈이었고, 너의 인생이 곧 나의 인생이며, 네가 곧 나였으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동안, 너를 떠나보낸 날에 대해서는 모두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잠에서 깬 것은 오후 7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일어나려고 하는데, 옆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서 쳐다보니 맥주병들이었다. ‘어휴, 이 화상아. 술 먹으면 문제가 해결되냐?’ 네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지친 몸뚱이를 이끌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내가 자고 있는 동안 NASA에서는 이번 달까지 할 새로운 업무를 부여했다. 예상대로였다.
‘We are sorry for your loss’부터 시작하여,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우주 비행사 부고 위로 문구가 담긴 성의 없는 이메일 하나였다. 너는, 그들에게는 이미 죽어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네가 보냈던 마지막 메시지를 큰 글자로 타이핑하고, 기지개를 펴며 그 메시지를 계속 뚫어져라 응시했다.
어떻게 너를 찾을 수 있을까. 너의 장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너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결국엔 너의 울림에 작은 잔향이라도 만들 수 있을까.
머리를 억지로라도 돌려야 한다. 책상 앞에 앉아서 별 생각을 다 했다. 몇 시간이 지나, 가능한 모든 생각을 다 쥐어짜낼 즈음 항법 통제사였던 시절 사용했던 프로그램이 컴퓨터에 남아 있음을 생각해 내었다. 이를 잘만 이용한다면, 비표준 시공간 너머에 있는 웜홀을 시뮬레이션해 볼 수 있고, 웜홀 너머에 있는 너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고, 아드레날린이 나오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너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만 입속에서 맴돌았다.
그 후 거의 일주일 동안, 나는 미친 듯이 웜홀의 위치와 그곳까지 진행하는 항법에 대해 계산하고, 몇천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몰래 나사의 감지기들을 끌어다 썼다. 솔직히 밥은 그동안 두세 번밖에 먹지 않았다. 한번은 계속 컴퓨터 앞에서 생각하다가 과로로 8시간 정도인가 기절한 적이 있었다. 일어나 보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다시 원상태로 복귀하는 데 꽤 힘이 들었다.
마침내, 네가 있는 좌표를 찾기 위한 프로그램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아직 가장 큰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오차였다.
컴퓨터 따위로는 구현하지 못할, 이 웅장한 우주는 양자컴퓨터가 너의 위치를 칼같이 계산하는 것을 막았다. 프로그램이 계산한 위치 주변 약 10의 16승 개의 시공간 복셀 전체가 오차범위였다. 그 오차 범위 속에서, 나는 사실상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찾아 봐야만, 너의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었다.
마음이 내려앉는다.
이젠, 너무나 많은 절망에 사로잡혀 충격을 받을 수도 있던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나는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너를 잃고, 너의 메시지도 잃고, 너의 위치라도 찾을 일말의 희망이 없어졌다.
“우주에 빈 공간은 없어. 존재가 있으면 그 주변은 장으로 가득 차지. 중력장이든, 전자기장이든. 뭐든 말이야. 존재가 진동하게 되면, 주변에 있는 장이 그 존재의 진동을 우주 구석구석까지 빛의 속도로 전달해. 이것이 온 우주에 퍼지면, 우주 구석구석에 있는 모든 존재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거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말이야…”
갑자기, 이 말이 왜 떠오른 걸까. 네가 떠나기 전날에 한 말이.
순간,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네 장이 나에게 닿았던 것일까.
그래, 네가 한 말이 맞다. 너와 내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네 장은 나에게 닿았을 것이다. 너를 찾아내려면 우리가 태초에서부터 갖고 있는 이끌림으로 줄을 당겨야 했던 것이었어. 심지어, 네가 보낸 메시지도 그것과 일맥상통하잖아. 애초에, 나는 너의 울림을 직감적으로 찾아야 했던 거지.
왜 이걸 아직까지 몰랐을까. 너는 조난당하기 전부터 신기하게도 나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거였는데, 어리석은 나는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닫고 말았어.
나는 책상 앞에 고쳐 앉았고, 쓸모없던 자료들을 모조리 치웠다. 바로 내가 만든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네가 있을 만한 시공간 복셀을 직관적으로 찾아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매우 깊은 심우주를 아주 미약한 시야만으로 관찰해가며 찾아야 했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동네 지리 읽듯이 모든 것이 환히 읽히기 시작했다. 불가능한 경우를 모두 제해가며 생각하던 중, 아주 따뜻한 느낌이 나는 복셀 하나가 나에게 보였다.
너였다.
네가 거기 있었다.
우주선의 미약한 양자신호와 함께.
나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바로 전화기를 들어 국장에게 연락했다.
“네, 접니다. 그녀를 찾았습니다.”
너는 항상 나에게 가르침을 주고, 나를 끌어당겼지. 심지어 내 꿈도 너의 흔적을 따라갔었고.
지긋지긋한 생도 생활을 벗어나, 나에게 새 삶을 준 것도 너였어.
이젠, 내가 너를 구하러 갈게.
너의 흔적, 너의 장, 너의 울림을 따라서.
2. 1.337초
수화기 너머에서 국장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근거는.”
나는 복셀의 좌표를 불렀고, 그 안에서 잡힌 미약한 양자 신호에 대해 설명했다. 설명은 길었고, 국장은 끝까지 끊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숨을 고르는 틈에, 가장 아픈 곳을 정확히 짚었다.
“10의 16승 개 중에서, 그 하나를 어떻게 골랐나.”
따뜻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건 나도 알았다.
“…직감입니다.”
한숨이 들렸다. 아주 길고, 사람을 불쌍하게 여길 때 나오는 종류의 한숨이었다. 그래도 국장은 전화를 끊지 않았다.
“내일 분석 팀에 넘기지. 그리고 자네가 지난 일주일 동안 내 감지기들을 몰래 쓴 건, 이 일이 끝나고 따지도록 하겠네.”
전화가 끊기고 나서야, 나는 내가 일주일 가까이 씻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모니터 앞에 다시 앉아 그 복셀을 들여다보았다. 좌표 몇 개와 흐릿한 신호 하나. 남들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점이었다. 나는 그 점이 따뜻하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었다. 직감이라는 단어가 입안에서 계속 썼다.
너였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직감은 아직 계산이 덜 끝난 계산일 뿐이라고.
분석 결과가 나온 건 이틀 뒤였다.
회의실 스크린에 그래프 하나가 떠 있었다. 잡음으로 뿌옇게 번진 바닥 위로, 가느다란 바늘 같은 것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솟아 있었다. 분석 팀장이 레이저 포인터로 그 바늘들을 하나씩 짚었다.
“주기는 4시간 49분 52초. 펄스 폭이 매우 좁고, 주기는 대단히 안정적입니다.”
팀장은 친절하게도 비교용 그래프까지 준비해 왔다. 오래전 은하면에서 발견된 장주기 전파원들의 펄스 모양이 내 바늘들 옆에 나란히 놓였다. 비슷했다. 적어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눈에는.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그리고 다음 문장에서 그대로 굳었다.
“자연 현상으로 판단됩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수십 분에서 몇 시간 간격으로 깜빡이는 장주기 천체가 꽤 여럿 보고됐는데, 그 부류와 특징이 일치합니다.”
누군가 가볍게 웃었다. 새 천체를 하나 발견하셨네요, 이름은 뭐로 하실 겁니까.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국장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전화기 너머의 한숨과 같은 모양이었다.
별이라니.
나는 평생 너를 별이라고 불러 왔다. 네 중력에 끌려 여기까지 왔다고, 너는 별에 가까운 존재라고. 그런데 정작 누군가 네 신호를 가리켜 별이라고 말하자, 숨이 막혔다. 은유가 사실이 되는 게 이렇게 잔인한 일인 줄은 몰랐다.
사람들이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동안, 한 사람만 스크린 앞에 남아 있었다. 분석 팀에서 가장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다. 태블릿을 옆구리에 낀 채로, 그 애는 바늘들을 오래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 애에게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그럴 기운이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넉 달 동안 한 번도 열지 않았던 파일을 열었다.
출발 당일의 교신 기록. 네가 떠나던 날부터 내 폴더 한구석에 있었지만, 나는 그 파일의 이름조차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그날의 기억이 없다는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기억나지 않는 건 아프지 않으니까.
그런데 별이라는 말이 자꾸 귀에 걸렸다. 네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것뿐이었다.
재생 버튼을 눌렀다.
“관제, 여기는 PLANCK-1. 진입 삼십 초 전.”
네 목소리였다. 넉 달 만이었다. 나는 의자 등받이를 붙잡았다.
“PLANCK-1, 관제. 사차원 벡터 확인. 전 항목 정상.”
그다음은 내 목소리였다. 나는 내가 그렇게 말했다는 걸 기억하지 못했다. 녹음 속의 나는 침착했다. 낯선 사람 같았다.
“PLANCK-1. 손가락.”
“뭐.”
“마이크에 다 들어간다.”
“싫은데.”
그 순간 모든 것이 한꺼번에 돌아왔다. 통제실의 차가운 공기, 화면 속 네 얼굴, 콘솔 모서리를 두드리던 네 손가락, 그걸 보면서 웃음을 참던 나. 나는 그날을 잊은 게 아니었다. 어딘가 깊은 곳에 묻어 두었을 뿐이었다.
출발 직전, 화면 속의 너는 헬멧을 쓰기 전에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두 번. 네가 긴장했다는 뜻이었다. 통제실에서 그걸 아는 사람은 나 하나였다. 나는 그 두 번을 보고, 일부러 목소리를 한 톤 낮췄었다.
“…기다릴게.”
“기다리긴 뭘 기다려. 늦으면 찾으러 와.”
그리고 잡음.
나는 한참 동안 그 잡음을 들었다. 늦으면 찾으러 오라고. 너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넉 달 동안 잊고 있었다. 네가 떠난 뒤로 내가 한 일이라고는 기다리는 것뿐이었는데. 너는 처음부터, 기다리지 말라고 했는데.
얼마나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눈물이 마를 즈음에야 나는 목소리들 밑에 깔린 다른 소리를 알아챘다.
톡. 톡. 톡.
네 손가락이 콘솔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파형 편집기를 열었다. 과학자로 산다는 건 이런 것이다. 울다가도 재고 싶어진다. 두드림과 두드림 사이의 간격을 하나씩 쟀다. 1.34초. 1.33초. 1.34초. 1.33초. 평균을 냈다.
1.337초.
그 숫자를 보는 순간, 잔디밭이 떠올랐다.
그날 벤치에서 네가 한 이야기 중에, 내가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해가 질 무렵이었다. 시공간이니 연체동물이니 NASA니 하는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고 난 뒤, 너는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무릎 위를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도서관 창가에서 몇 달 동안 지켜보던 바로 그 버릇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서 물었다. 그거, 뭘 세는 거야?
“일 점 삼삼칠삼 초.”
너는 하늘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PSR B1919+21. 사람이 처음으로 찾아낸 펄서의 주기야. 너무 규칙적이라서, 처음엔 다들 외계인이 보낸 신호가 아닐까 했대. 그래서 붙은 별명이 LGM-1. 작은 초록 인간.”
너는 조금 웃었다.
“처음 발견한 사람은 대학원생이었는데, 다들 잡음이라고 할 때 혼자서 끝까지 들여다봤대. 나는 이 박자가 좋아. 별인데, 꼭 누가 부르는 것 같잖아.”
나는 그때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그날 밤 기숙사 침대에 누워서, 몰래 손가락으로 1.337초를 세어 보았을 뿐이다. 그 박자가 네 것이어서.
그 뒤로 몇 주 동안, 나는 도서관 책상 밑에서 그 박자를 연습했다. 창밖으로 네가 무릎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같은 속도로 책상 다리를 두드렸다. 옆자리 동기에게 시끄럽다는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그 버릇을 잊었다. 잊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계산기를 켰다.
분석 팀이 찾아낸 주기, 4시간 49분 52초. 초로 바꾸면 17,392초. 그걸 1.3373초로 나누었다.
13,005.
국장이 저 너머의 시간은 꽤 느리게 간다고 말했을 때, 그 ‘꽤’의 정체가 1만 3천 배 안팎이었다. 내가 폐인처럼 몇 달을 보내는 동안 네게는 10분 남짓밖에 흐르지 않았다는 계산도 거기서 나왔다. 이 숫자는 그 범위 안에 있었다. 그것도 한가운데에.
손이 떨려서 두 번 틀렸다. 세 번째에야 제대로 입력할 수 있었다. 시간이 느려지는 정도는 그곳의 중력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려 준다. 배율이 정해지면 깊이가 정해지고, 깊이가 정해지면 너는 얇은 껍질 하나 위에 있어야 한다. 나는 그 껍질을 내 프로그램의 오차 범위와 겹쳐 보았다.
10의 16승 개의 복셀이, 서른한 개로 줄었다.
나는 그 서른한 개를 하나씩 열어 보았다. 스물아홉 개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하나는 먼 은하의 잡음이 스쳐 가는 자리였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내가 따뜻하다고 느꼈던 바로 그 복셀이었다.
그 따뜻함에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너의 박자를 알아보았던 것이다. 알아보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로.
너는 네 좌표를 몰랐다. 그래서 대신 네 시간을 보냈다. 원래 박자를 아는 사람에게는, 느려진 박자가 곧 깊이이고 좌표였다. 이 우주에서 그 박자를 아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너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네가 사무치게 그리웠고, 동시에 조금 화가 났다. 이런 걸 생각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좌표 하나 모르는 곳에 혼자 떨어져 있다는 게. 그리고 그 사람이 마지막 힘을 짜내 보낸 것을, 나는 넉 달 동안 모른 채로 술이나 마시며 지냈다는 게.
1967년의 사람들은 별의 신호를 사람의 신호로 의심했다. 우리는 사람의 신호를 별로 분류할 뻔했다.
창밖이 희뿌옇게 밝아 오고 있었다. 나는 옥상으로 올라가 담배를 꺼냈다. 바람이 불었지만, 이번에는 한 번에 불이 붙었다.
아침 회의에서 나는 같은 계산을 한 번 더 했다. 이번에는 사람들 앞에서, 천천히.
분석 팀장은 우연일 가능성을 물었다. 나는 자연 천체의 주기가 우연히 그곳의 시간 배율 곱하기 1.3373초와 만분의 일 안쪽에서 맞아떨어질 확률을 말해 주었다. 팀장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그는 한참 동안 자기 노트북을 두드리더니, 조용히 화면을 돌려 보였다. 내 계산을 자기 방식으로 처음부터 다시 해 본 결과였다. 숫자는 같았다. 그는 그걸로 사과를 대신했다. 나는 그걸로 충분했다.
국장이 입을 연 건 한참 뒤였다.
“그 박자를, 자네 말고 아는 사람이 있나.”
“없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보낸 겁니다.”
국장은 오래 나를 보았다. 그러고는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천천히 닦았다.
“이메일을 한 통 더 써야겠군. 이번에는 사과 메일로.”
회의실에 처음으로 웃음 비슷한 것이 돌았다.
그때 구석에서 누군가 손을 들었다. 어제 스크린 앞에 혼자 남아 있던, 그 막내 분석관이었다. 눈이 빨갰다.
“선배님 계산, 밤새 다시 돌려 봤습니다. 맞아요.”
그 애는 태블릿을 들어 보였다.
“그런데 하나 더 있어요. 지난 넉 달 치 보관 데이터를 전부 접어 봤는데요, 주기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출발 열흘 뒤에는 4시간 49분 11초였어요. 지금은 52초고요.”
사십일 초.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다들 그 뜻을 알았다. 배율이 커지고 있다는 것. 너의 시간이 점점 더 느려지고 있다는 것. 네가 더 깊은 곳으로, 아주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는 것.
“이대로면 신호도 계속 약해집니다. 제 모델로는 십삼사 년쯤 뒤에 탐지 한계 아래로 내려가요.”
너는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느려지고 있었다.
회의가 끝난 뒤 나는 그 애를 불러 세웠다. 왜 밤새 남의 계산을 다시 돌려 봤느냐고 물었다. 그 애는 잠깐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다들 잡음이라고 해서요.”
나는 그제야 그 애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스물다섯이나 되었을까. 밤을 새운 눈 밑이 거뭇했고, 태블릿을 쥔 손가락 끝에는 펜 자국이 묻어 있었다. 그 애는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꾸벅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1967년의 그 대학원생을 잠깐 생각했다.
그날 오후부터 심우주 감지기 배열 하나가 통째로 네 복셀을 향했다. 이제는 몇 달 치를 접어서 겹칠 필요도 없이, 펄스 하나하나가 실시간으로 잡혔다. 나는 휴대전화에 알림을 하나 걸어 두었다. 펄스가 잡힐 때마다 울리도록.
국장은 매일 자정, 심우주 통신망에서 남는 시간 1분을 나에게 떼어 주었다. 네가 있는 곳까지 석 달이 걸리는 편지였다.
오후 세 시 십칠 분, 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가 짧게 떨렸다. 회의 중이었다. 누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진동이 허벅지를 타고 올라오는 동안, 나는 숨을 참고 있었다.
너였다.
네 시간 사십구 분 오십이 초마다, 너는 나를 불렀다.
그날 자정, 나는 녹음 버튼 앞에서 삼십 분을 망설였다. 일 분에 무엇을 담아야 할지 몰랐다. 사과해야 할 것도, 설명해야 할 것도, 묻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다. 넉 달 동안 잊고 있었던 네 마지막 말에 대해서, 네가 떠난 날 내가 받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몇 번을 녹음하고 지웠다. 결국 나는 거의 아무것도 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대답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너만 알면 된다.
3. 선내 시간 00:27
이십칠 분째다.
헬멧 안의 숫자는 47:32:41. 산소는 넉넉하다. 문제는 아래다. 깊이 계기는 아주 조금씩, 그러나 한 번도 쉬지 않고 숫자를 늘려 가고 있다. 그만큼 내 시간은 느려지고, 그만큼 네 쪽에서 보는 내 박자는 길어진다. 계산은 간단한데, 기분은 전혀 간단하지 않다.
모듈의 불빛은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켜지고, 꺼지고, 다시 켜진다. 나는 그 불빛에 맞춰 무릎을 두드린다. 할 일이 이것밖에 없어서가 아니다. 이걸 하고 있으면 덜 무섭다.
이십칠 분 동안 나는 많은 걸 했다. 선체의 균열을 임시로 막았고, 살아 있는 계기와 죽은 계기를 가려냈고, 남은 전력을 어디에 쓸지 순서를 정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시간에는, 그 13바이트를 생각했다.
여기서의 이십칠 분이면, 거기서는 여덟 달쯤이다. 너는 이미 받았을 것이다. 통제실 사람들이 암호냐 오류냐 머리를 싸매는 사이, 너 혼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겠지. 너는 한 번에 알아봤을 테니까. 문제는 그다음이다. 장을 찾아 달라는 말을, 너는 어디까지 알아들었을까. 알아들었다면, 지금쯤…
그때 수신기가 운다.
지구다.
지구에서 출발한 전파는 이 우물 바닥까지 떨어지는 동안 파장이 한참 짧아져서, 여기서는 적외선이 되어 들어온다. 설계팀이 이것만큼은 제대로 준비해 두었다. 배는 들어온 신호를 붙잡아 원래 빠르기로 늘여서 틀어 준다.
잡음. 숨소리. 그리고,
“…여기는 관제. 아니, 이제 관제는 아니지. 나야.”
네 목소리다.
“늦으면 찾으러 오라며. 찾았어.”
나는 숨을 멈춘다.
“네 박자 들려. 네 시간 사십구 분 오십이 초마다. 일 점 삼삼칠삼. 그날 잔디밭에서 네가 무릎으로 세던 거. …기다려. 우리가 갈게.”
일 분짜리 편지는 거기서 끝난다.
헬멧 안에서는 눈물을 닦을 수가 없다. 이런 건 설계할 때 아무도 생각을 안 했나 보다. 나는 흐르는 대로 둔다. 웃음도 흐르는 대로 둔다. 이 화상. 결국 알아들었구나. 벤치에서 내 말을 반도 못 알아듣고 고개만 끄덕이던 녀석이.
나는 그 일 분을 세 번 되감아 듣는다. 세 번째에는 네 숨소리까지 들린다. 말을 꺼내기 전에 한 번, ‘찾았어’ 다음에 한 번. 너는 긴장하면 숨을 두 번에 나눠 쉰다. 벤치 앞에서 처음 말을 걸어왔을 때도 그랬다. 너는 그걸 모를 것이다. 네가 나를 보는 동안, 나도 너를 보고 있었다는 것도.
두 번째 편지가 들어온 건 칠 초 뒤다.
세 번째는 그다음 칠 초 뒤.
나는 곧 사정을 이해한다. 너는 하루에 한 통씩 쓰고, 네 하루는 여기서 칠 초다. 편지 한 통을 듣는 데는 일 분이 걸린다. 너의 날들은 내가 듣는 속도보다 아홉 배 빠르게 쌓인다.
따라잡을 수가 없다.
나는 고르기 시작한다. 한 통을 끝까지 듣고, 여덟 통을 건너뛰고, 다시 한 통을 듣는다. 건너뛴 여덟 통에 무슨 말이 들어 있었을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으니까.
“오늘 옥상 바람이 셌어. 라이터가 한 번에 켜졌어. 별일 아닌데 그냥.”
“새벽 세 시에 네가 불렀어. 일어나서 받았어. 할 말은 없었는데.”
“구내식당 카레가 또 싱거웠어. 네가 있었으면 한마디 했겠지.”
지루한 편지들이다. 너다운 편지들이다. 나는 그 지루함이 좋아서 운다.
나는 알고 있다. 그날, 네가 옥상에서 무엇을 내려놓았는지.
통보를 듣고 네가 조용히 방을 나갔을 때, 나는 따라가지 않았다. 따라가면 무슨 말을 하게 될지 알았으니까. 너에게 양보하겠다는 말은, 끝내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다렸다. 네가 자리를 내놓았다는 걸 알고 나서야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왜 그랬냐고 따졌고, 실컷 울었다. 그 울음은 진짜였다. 하지만 그 한가운데에 안도가 섞여 있었다는 것도, 나는 안다.
나는 받았다. 염치없이.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끝내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자리를 받아 든 순간부터 나는 이미 하늘 쪽을 보고 있었으니까.
우리가 갈게, 라고 너는 말했다. 우리가.
다행이다. 너 혼자가 아니라서. 네가 또 뭔가를 내려놓게 될까 봐, 나는 그게 제일 무섭다.
불빛이 깜빡인다. 나는 무릎을 두드린다.
들려. 나도 들려.
4. 창(窓)
나는 다섯 시간 단위로 사는 사람이 되었다.
정확히는 네 시간 오십 분 남짓. 그 간격은 달마다 몇 초씩 늘어났다. 알림음은 기본음 대신, 출발 당일의 녹음에서 잘라 낸 소리 하나로 바꾸어 두었다. 네 손가락이 콘솔을 두드리던 소리. 톡.
휴대전화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톡, 하고 울렸다. 나는 그 소리가 오기 몇 분 전에 먼저 눈을 뜨는 법을 배웠다. 새벽 세 시에도, 샤워를 하다가도, 회의 중에도. 동료들은 곧 익숙해졌다. 회의 도중에 내 주머니에서 톡 소리가 나면, 발표하던 사람도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아무도 그걸 두고 농담하지 않았다. 알림이 오면 나는 하던 일을 잠깐 멈추었다. 대답할 방법은 없었다. 멈추는 것이 내 대답이었다.
그리고 매일 자정, 나는 일 분을 썼다.
일 분은 생각보다 짧았다. 처음 며칠은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으려다 번번이 중간에서 잘렸다. 나중에는 요령이 생겼다. 큰 이야기는 빼고, 그날 있었던 작은 일 하나만 말하는 것. 옥상의 바람이나, 구내식당의 싱거운 카레 같은 것. 네가 들으면 하품을 할 만한 것들.
네가 그 편지들을 다 들을 수 없다는 건 계산해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매일 썼다. 네가 아무거나 하나 집어 들었을 때, 그게 너무 슬픈 편지가 아니기를 바라면서. 대답은 오지 않았고, 올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나는 너에게 하품할 거리를 보냈다. 살아 있는 사람들끼리는 원래 그런 걸 주고받으니까.
웜홀 예측팀의 보고서가 나온 건 그해 가을이었다.
PLANCK-1 시절 매일 얼굴을 보던 사람들이었다. 너에게 가는 창을 처음 찾아냈던 사람들. 팀장은 나를 보자마자 눈을 피했다. 좋은 소식을 들고 온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웜홀은 아무 때나 열리지 않는다. 적절한 때의, 적절한 좌표에서만 발견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창이 하필 네가 가라앉고 있는 영역 근처로 열려야 했다. 팀장은 화면에 긴 그래프를 띄웠다. 앞으로 백 년 동안 열릴 창들이 가느다란 막대가 되어 줄지어 서 있었다. 대부분은 엉뚱한 곳으로 열렸다. 네 복셀 근처를 지나는 막대는 두 개뿐이었다.
다음 창은 8년 6개월 뒤였다. 그다음 창은 39년 뒤였다.
나는 그 두 숫자를 한참 동안 보았다. 막내 분석관의 모델대로라면, 네 신호는 십삼사 년 뒤에 탐지 한계 아래로 가라앉는다. 39년 뒤의 창이 열릴 즈음이면, 우리는 네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네 우주복의 산소는 그때까지도 넉넉하겠지만, 너의 울림에는 그만한 시간이 없었다.
기회는 한 번이었다. 8년 6개월 안에, 배를 한 척 새로 지어야 했다.
그다음 몇 달은 숫자와 싸우는 시간이었다. 청문회장에서 나는 국장 뒤에 앉아 있었다. 발언권은 없었다. 국장은 숫자만 말했다. 13,005. 4시간 49분 52초. 사십일 초. 서른한 개의 복셀. 위원들은 숫자를 좋아했지만, 숫자로 추모식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중 한 사람이 아주 정중하게 말했다.
“우리는 이미 그녀를 애도했습니다. 언론에 발표했고, 유족에게 위로를 전했고, 추모식까지 치렀습니다. 이제 와서 살아 있다고 말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일입니까.”
We are sorry for your loss. 나는 그 문장을 떠올렸다.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그 문장이, 이제는 너를 구하는 일을 막아서고 있었다.
위원이 말한 유족은 너의 어머니였다. 청문회가 끝난 날 저녁,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추모식 이후로 처음이었다. 어머니는 인사도 없이 물었다. 그 애가 살아 있다는 게 정말이냐고.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전화를 스피커로 돌려 두고 다음 알림을 기다렸다. 한 시간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톡.
수화기 너머에서 오래 우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그 소리를 알았다. 네가 어릴 때부터 식탁을 두드리던 소리라고 했다.
그날 밤 국장은 나를 자기 방으로 불렀다. 책상 위에 서명되지 않은 서류가 한 장 놓여 있었다. 국장은 한참 동안 창밖을 보다가 말했다.
“나도 한 번 놓아 본 적이 있네. 관제석에서. 그게 옳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
국장은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국장은 만년필 뚜껑을 열고, 서류에 서명했다.
진짜 문제는 설계 검토 회의에서 나왔다.
마지막 구간이었다. 우물 바닥으로 내려갈수록 배의 시간은 느려지고, 배에서 보는 지구의 시간은 빨라진다. 지상의 관제사가 한 문장을 말하는 사이, 배 안에서는 눈 한 번 깜빡할 시간밖에 지나지 않는다. 배에서 한마디 물으면, 대답은 지구의 며칠 뒤에나 돌아온다. 결국 지상 관제는 아무 쓸모가 없어진다.
설계팀은 온갖 방법을 내놓았다. 자동 항법, 인공지능 조종, 미리 짜 둔 궤적. 전부 같은 곳에서 막혔다. 우물 바닥의 시공간은 매 순간 다시 그려지고, 미리 짠 길은 그려지는 순간 낡는다. 마지막 구간에서는 조종사가 혼자 길을 찾아야 했다.
박자를 들으면서.
네 박자는 좌표였다. 가까워질수록 빨라지고, 멀어질수록 느려진다. 그 흔들림을 귀로 따라가며 배를 모는 것. 이론으로는 간단했다. 문제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의 박자를 기계의 박자와 구별해 들을 줄 알고, 그 박자가 조금만 흐트러져도 알아챌 수 있는 사람.
“마지막 구간은, 그 박자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몰아야 합니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고, 회의실의 눈이 전부 나에게 모였다.
관제사를 조종석에? 위원 한 명이 되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사관학교 시절의 비행 기록을 떠올렸다. 조종 특기. 너만큼은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았던 숫자들. 내가 스스로 내려놓은 자리.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옥상에 올라갔다.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바람이 불었고, 이번에는 불이 잘 붙지 않았다. 몇 번을 헛손질하다가 나는 웃고 말았다. 그날도 이랬다. 네가 조종석에 앉고 내가 관제석에 앉기로 한 날도.
그날 나는 여기서 깨달았다. 조종사는 나의 꿈이 아니었다고. 너의 꿈이었다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꿈 때문에 가는 게 아니었다.
나는 불붙지 않은 담배를 주머니에 넣고 내려왔다.
그날 자정, 나는 일 분을 이렇게 썼다.
“내가 갈게. 조종석에는 내가 앉아. 웃지 마. 진짜야.”
녹음을 마치고 나서야 알았다. 처음으로 ‘우리가’가 아니라 ‘내가’라고 말했다는 걸.
석 달하고 스무 시간이 지난 새벽 세 시 이십팔 분, 휴대전화가 울리지 않았다.
나는 이미 깨어 있었다. 톡 소리가 오기 전에 눈을 뜨는 건 이제 몸이 알아서 하는 일이었다. 세 시 이십팔 분. 삼십 분. 사십 분. 알림 설정을 확인했다. 배터리를 확인했다. 전화기를 껐다가 다시 켰다. 네 시.
통제실에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간에 야간 감시를 서고 있던 건 막내 분석관이었다. 그 애는 몇 달째 자원해서 밤을 맡고 있었다.
“안 들어왔어요.”
그 애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옷을 대충 걸치고 뛰었다. 새벽의 통제실은 모니터 불빛만 푸르스름했다. 그 애는 화면 앞에 선 채로 나를 돌아보았다. 화면 속의 선은 평평했다.
다음 펄스가 와야 할 시각은 아침 여덟 시 십구 분이었다. 우리는 둘이서 그 시각을 기다렸다. 여덟 시 십구 분이 지났다. 선은 평평했다.
아침이 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분석 팀장이 데이터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신호 소실로 봐야 합니다. 위원회의 최종 표결은 그 주 금요일이었다. 누군가 전화를 걸러 나갔다. 무슨 전화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았다.
국장이 내 뒤에 서서 한참을 있다가 말했다.
“여기까지일지도 모르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평평한 선만 보고 있었다.
그 애가 커피를 가져다 놓았다. 나는 마시지 않았다. 커피가 식었고, 그 애는 식은 커피를 치우고 새 커피를 가져다 놓았다. 그것도 식었다. 그 애는 한 번도 나에게 괜찮을 거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게 고마웠다.
열 시간이 지났다.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열다섯 시간이 지났다. 통제실에는 나와 그 애, 그리고 냉각팬 소리만 남았다.
우주복의 마흔여덟 시간을 생각했다. 선체의 금을 생각했다. 네가 가라앉고 있는 그 아래를 생각했다.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경우를 떠올렸다. 모듈의 고장. 전력의 소실. 그리고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한 가지.
크리스마스 전날 밤도 생각했다. 숙소로 돌아가던 길, 네가 입술을 달싹이다가 장 이야기를 꺼내던 순간. 나는 그날 네 말에 ‘그렇지’라고밖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게 마지막 대답이 될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좋은 말을 했을 텐데.
나는 한 번도 기도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구에게 해야 하는지 몰랐으니까. 그날 나는 처음으로 장에게 빌었다. 네가 말한 그 장에게. 존재가 있으면 그 주변을 가득 채운다는 그것에게. 네가 아직 거기 있다면, 제발 한 번만 흔들려 달라고.
열여덟 시간 오십 분째에, 선이 튀었다.
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톡.
그 애가 먼저 소리를 질렀다. 나는 소리도 내지 못했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복도에서 뛰어 들어왔다. 누군가 울었고, 누군가 웃었고, 분석 팀장은 의자에 주저앉았다. 다음 펄스는 정확히 네 시간 오십일 분 뒤에 왔다. 그다음 것도. 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그 애가 먼저 계산했다. 태블릿을 들고 와서 내 앞에 내밀었다.
“선배님. 끊긴 시각이요.”
내가 ‘내가 갈게’를 보낸 그날 자정부터, 신호가 끊긴 새벽 세 시 이십팔 분까지. 석 달하고 스무 시간.
석 달은 전파가 너에게 닿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남은 스무 시간은, 네가 그 말을 듣고 알아듣는 데 걸린 몇 초였다. 네 쪽의 몇 초가, 이쪽에서는 스무 시간이었다.
너는 듣고 있었다.
내 편지를, 듣고 있었다.
그날 자정, 나는 일 분을 이렇게 썼다.
“들었구나. 내 말, 들었구나. 너 숨 멈췄던 거라면, 그렇게 믿을게.”
금요일, 표결은 통과되었다. 그녀는 우리 말을 듣고 있습니다. 국장이 위원회에서 한 말은 그 한 문장이 전부였다고 한다.
나는 그 열아홉 시간이 너의 숨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네 숨 몇 번이, 나에게는 열아홉 시간이었다고.
5. 선내 시간 00:52
“내가 갈게. 조종석에는 내가 앉아. 웃지 마. 진짜야.”
나는 웃지 않는다.
오십이 분째. 그동안 나는 너의 날들을 조각조각 들어 왔다. 한 통을 듣고 여덟 통을 건너뛰는 식으로. 창이 8년 6개월 뒤에 열린다는 것도, 위원회가 나를 이미 추모했다는 것도, 국장이 서명을 했다는 것도 그렇게 알았다. 추모식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조금 웃었다. 누가 조사를 읽었을까. 너였다면 끝까지 못 읽고 내려왔겠지. 아니, 너는 아예 가지 않았겠지.
그리고 지금, 건너뛰었어야 할 여덟 통 사이에서 하필 이 한 통을 붙잡았다.
내가.
우리가, 가 아니라.
이 화상이 또.
나는 알고 있다. 여기까지 내려오려면 무엇을 치러야 하는지. 네가 우물 속으로 한 뼘 내려올 때마다 지구의 시간은 네게서 한 뼘씩 달아난다. 네가 나를 찾는 몇 시간 동안, 네가 아는 모든 사람의 몇 년이 지나간다. 운이 좋아서 돌아간다 해도, 네가 돌아갈 곳은 네가 떠난 곳이 아니다. 거기다 창이 열리기까지 8년 반이 먼저 붙는다. 네 서른몇 살의 전부가.
그리고 너는 관제석을 떠나야 한다.
너는 모르겠지만, 너는 관제석에서 제일 빛났다. 훈련 기록에서 네 지연 시간이 처음으로 인공지능보다 짧아지던 날, 나는 조종 시뮬레이터 안에서 그 숫자를 보고 혼자 소리를 질렀다. 너는 몰랐겠지. 너는 늘 내 쪽만 보고 있었으니까. 네가 무엇을 잘하는지는, 늘 나만 보고 있었다.
너는 평생 내 궤도를 돌았다. 별이 빛나는 한, 위성은 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그 말을 꺼내기까지 나는 하루 종일 망설였다. 우주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한 날이었으니까. 그런데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네가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그 눈을 보는데, 내가 떠나고 나면 이 사람은 무엇으로 버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장 이야기를 했다. 작별 인사를 작별 인사처럼 하면 네가 못 견딜 것 같아서, 물리학처럼 했다.
존재가 있으면 그 진동이 언젠가는 닿는다고. 그때 나는 그게 위로라고 생각했다.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거라고. 그런데 지금 보니 그 말에는 뒷면이 있다. 장이 닿는 한, 너는 멈추지 않는다. 내가 여기서 깜빡이는 한, 너는 네 인생을 통째로 들고 이 우물로 걸어 들어온다.
그러니까, 별이 꺼지면.
손을 뻗으면 스위치가 닿는다.
이 불빛이 멈추면, 지구에서는 신호가 사라진다. 사람들은 합리적이니까, 기다려 보고, 다시 기다려 보고, 결국 이메일을 한 통 더 쓸 것이다. 너는 울겠지. 오래 울겠지. 그리고 언젠가는 울음을 그치고, 네 세상의 시간을 네 속도로 살겠지. 관제석에 앉아서. 누군가의 길을 비춰 주면서.
놓아준다는 건, 그런 거다.
나는 스위치를 내린다.
불빛이 꺼진다. 선실이 어두워진다. 무릎 위의 손가락도 멈춘다.
하나.
지금쯤 너는 자고 있을 것이다. 아니, 깨어 있겠지. 알림이 오기 전에 먼저 눈을 뜨는 사람이니까.
둘.
너는 전화기를 볼 것이다. 알림 설정을 확인하고, 배터리를 확인하고, 껐다가 다시 켜 보겠지. 그다음엔 옷을 대충 걸치고 뛰어가겠지. 너는 늘 그랬다.
셋.
무섭다.
솔직히 말하면, 놓아준다는 말은 반쯤 거짓말이다. 나는 여기서 혼자 가라앉는 게 무섭다. 나는 네가 오기를 바란다. 처음부터 그랬다. 창밖의 까만 것을 볼 때마다, 나는 네가 오기를 바랐다. 13바이트를 보낸 것도 그래서였다. 나는 구조대를 부른 게 아니었다. 너를 불렀다.
넷.
그리고 이건, 내가 정할 일이 아니다.
네가 조종석에 앉겠다고 한 건, 어쩌면 평생 처음으로 네가 스스로 정한 일인지도 모른다. 내 꿈을 따라서가 아니라, 네 이유로. 그걸 내가 꺼 버리는 건 놓아주는 게 아니다. 네 선택을, 내가 대신 내려 버리는 거다. 그날 옥상에서, 우리 둘이 정했어야 할 일을 네가 혼자 정해 버렸던 것처럼.
다섯.
손이 먼저 움직인다. 스위치가 올라가고, 불빛이 다시 깜빡인다. 켜지고, 꺼지고, 다시 켜진다.
나는 한참 동안 숨만 쉰다.
스위치를 올린 손을 내려다본다. 이 손은 방금 무를 수 없는 걸 골랐다. 평생 나는 누군가에게 받는 사람이 되는 게 싫었다. 자리를 받을 때도, 도움을 받을 때도. 그런데 지금은 받겠다고 정했다. 와 달라고. 네 인생의 몇 년을, 염치없이, 한 번 더.
내가 다섯을 세는 동안, 너는 열아홉 시간쯤을 기다렸을 것이다. 전화기를 쥐고, 평평한 무언가를 노려보면서. 미안해. 정말로.
편지들은 그 사이에도 칠 초마다 도착한다. 나는 이제 도착하는 순서대로 한 통씩, 앞부분만 들춰 본다. 너를 기다리게 한 만큼, 이번엔 내가 기다릴 차례다. 십 분쯤 지났을까, 나는 그 한 통을 찾아낸다. 네 목소리가 이상하게 가라앉아 있다.
“들었구나. 내 말, 들었구나. 너 숨 멈췄던 거라면, 그렇게 믿을게.”
나는 헬멧 안에서 웃는다. 울면서 웃는다.
아니야, 바보야. 나는 너를 버리려고 했어.
그런데도 너는 그걸 숨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믿겠다고 한다. 믿겠다는 말은, 반쯤은 알고 있다는 뜻인데.
나는 무릎을 두드린다. 불빛에 맞춰서, 조금 세게.
그래. 와. 대신 늦지 마.
6. 후배
네 박자가 길어질수록, 내 하루도 조금씩 길어졌다.
4시간 52분. 4시간 55분. 5시간. 톡과 톡 사이가 벌어질 때마다 나는 그만큼 너의 깊이를 느꼈다. 세상에 그렇게 무서운 시계는 없었다. 시침이 앞으로 가는 게 아니라, 아래로 가는 시계.
동기의 결혼식에서도 톡이 울렸다. 주례가 두 사람의 앞날을 이야기하던 참이었다. 나는 식장 뒷문으로 조용히 나가서, 복도 창가에 한참 서 있다가 들어왔다. 신랑은 나중에 나를 끌어안고 고맙다고 했다. 와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나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와 준 것만으로도.
PLANCK-2의 설계도가 확정되던 날, 나는 조종 훈련을 시작했다.
훈련은 원심 분리기에서 시작되었다.
스무 살의 나는 9G를 버텼다. 서른넷의 나는 7G에서 시야 가장자리가 까맣게 말려 들어왔고, 7.5G에서 꺼졌다. 눈을 떴을 때 교관이 내 뺨을 두드리고 있었다. 입안에서 쇠 맛이 났다. 첫 평가는 불합격이었다.
조종석은 내가 스스로 내려놓았던 자리였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 그 자리는 조금 높아져 있었다.
나는 담배를 끊었다. 옥상에 올라갈 이유가 하나 줄었다. 아침마다 뛰었고, 저녁마다 매달렸다. 사관학교 시절처럼 자료실 구석에 죽치고 앉아 비행 교범을 외웠다. 네가 아무렇지 않게 1등을 거머쥐던 그 과목들을, 나는 또다시 피나는 노력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스무 살의 나와 서른넷의 나는 같은 책을 들고 같은 사람을 쫓고 있었다.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에는 네가 앞에 있지 않다는 것뿐이었다. 너는 아래에 있었다.
두 번째 평가도 떨어졌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그만둘까 생각했다. 내가 아니어도 될지 모른다고. 더 젊고, 더 빠르고, 7.5G에서 꺼지지 않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그 누군가에게 녹음 파일을 넘겨주고, 네 박자를 가르치고, 나는 관제석에 남으면 되는 거라고. 그때 주머니 속에서 톡, 소리가 났다. 나는 한참 그 소리를 붙들고 앉아 있다가, 다음 날 아침 다시 원심 분리기에 들어갔다.
세 번째 평가는 통과였다. 아슬아슬하게. 교관은 점수표에 서명하면서, 나이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고 했다. 칭찬인지 아닌지 한참 생각했다.
그 애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안 건 훈련을 시작하고 한 해쯤 지나서였다.
막내 분석관이었던 그 애는 PLANCK-2 팀이 꾸려지자 제일 먼저 지원서를 냈다. 처음에는 데이터를 맡았고, 얼마 뒤에는 관제 트랙 선발 시험에 붙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내가 가는 곳마다 그 애가 있었다. 원심 분리기 통제실 구석에, 시뮬레이터 관람창 뒤에, 자료실 맞은편 책상에. 옆구리에 태블릿을 끼고, 서늘한 눈으로.
나는 그 눈을 알았다.
나였다. 도서관 창가의 나.
솔직히 말하면, 그게 반갑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본다는 것이. 그 시선 끝에서 무엇이 기다리는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끌려가다가, 닮아 가다가, 끝내 부딪히는 것. 그 애가 어느 날부터 내가 마시는 캔커피를 똑같이 들고 다니는 걸 보고, 나는 거의 확신했다.
그 애에게는 버릇이 하나 있었다. 관제석에 앉기 전에, 꼭 콘솔을 손가락 마디로 두 번 두드렸다. 똑똑. 한번은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그 애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대답했다.
“관제석한테 인사하는 거예요. 들어가도 되냐고.”
나는 웃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 애는 내가 웃지 않은 걸 오래 고마워했다고, 나중에 들었다.
그해 가을 어느 자정, 나는 일 분을 이렇게 썼다.
“요즘 나를 멀리서 지켜보는 녀석이 하나 있어. 꼭 옛날의 나 같아. 다들 그러는데, 걔한테는 내가 별이래. 웃기지. 평생 네 위성이었던 놈한테.”
그 애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건, 그해 겨울 옥상에서였다.
나는 담배 대신 캔커피를 들고 있었고, 그 애도 같은 캔커피를 들고 있었다. 바람이 셌다. 나는 오래 미뤄 둔 질문을 했다.
“네 꿈이 뭐야?”
“관제요.”
대답이 너무 빨라서, 나는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 그러다 필요 이상으로 차갑게 말해 버렸다.
“나를 따라온 거라면, 그만둬.”
그 애는 잠깐 나를 보았다. 서늘한 눈이었지만, 상처받은 눈은 아니었다. 그러다 제 손에 든 캔을 내려다보고는, 조금 웃었다.
“이거 때문에 그러시는 거면, 5층 자판기에 이것밖에 안 남아서 그래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선배님을 따라온 것도 아니에요.”
그 애는 난간에 팔을 걸쳤다.
“대학원 때 PLANCK-1 훈련 기록을 처음 봤어요. 관제사 지연 시간 그래프요. 처음엔 인공지능보다 한참 느린데, 어느 날부터 인공지능보다 빨라져요. 사람이 기계보다 먼저 길을 찾는 거예요. 그 선이 인공지능 선 밑으로 내려가는 지점을, 저는 몇 번이고 다시 봤어요. 그걸 보고 이게 제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 애는 잠깐 말을 고르다가 덧붙였다.
“선배님이 한 일을 보고요. 선배님이 아니라.”
바람 소리 사이로 나는 그 말을 오래 되씹었다.
선배님이 한 일을 보고요. 선배님이 아니라.
관제석에 처음 앉던 날을 기억한다. 너에게 조종석을 내어 주고, 이건 그저 네 길을 비춰 주는 자리라고, 네 빛을 받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앉았던 자리. 그런데 지연 시간이 처음으로 인공지능 밑으로 떨어지던 날, 나는 혼자 화장실에 가서 주먹을 쥐고 소리 없이 웃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너에게도. 그게 무엇이었는지, 나는 그때 몰랐다.
지금은 알았다.
나는 네 길 위에서, 처음으로 내 것을 하나 주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모르는 채로 몇 해 동안 쥐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너의 꿈을 내 꿈인 줄 알고 따라갔다. 이번에는 내 꿈이 무엇인지 알고서, 그걸 내려놓고 너에게 간다. 이상한 일이었다. 무언가를 내려놓는데, 그게 처음으로 온전히 내 선택처럼 느껴졌다.
옥상에서 내려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 애가 나를 따라온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아주 조금은, 서운하다고. 누군가 나를 별처럼 본다고 믿었던 몇 달 동안, 나는 그 시선이 무거우면서도 싫지만은 않았다. 너는 그 무게를 평생 견뎠던 걸까.
그날 자정, 나는 일 분을 이렇게 고쳐 썼다.
“지난번 그 녀석 말이야. 나 따라온 거 아니래. 자판기에 그 커피밖에 없었대.”
그 겨울부터 나는 그 애에게 박자 듣는 법을 가르쳤다.
교재는 출발 당일의 교신 기록 하나뿐이었다. 목소리 밑에 깔린 네 손가락 소리. 사람이 손으로 두드린 1.337초는 기계의 1.3373초와 다르다. 조금 빠르고, 조금 느리고, 가끔 망설인다. 그 흔들림에도 모양이 있다. 숨을 들이쉴 때 조금 빨라지고, 내쉴 때 조금 늦어진다. 긴장하면 간격이 짧아지고, 무언가에 집중하면 오히려 반듯해진다. 나는 그 모양을 그 애에게 들려주었다.
그 애는 빨리 배웠다. 나보다 빨랐다. 몇 주 만에 그 애는 녹음 속 두드림 몇 개만 듣고도 네가 그 순간 숨을 들이쉬고 있었는지 내쉬고 있었는지를 맞혔다. 나한테는 몇 년이 걸린 일이었다.
어느 날 그 애가 물었다.
“그분처럼 생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선배님처럼요. 선배님은 그분이랑 닮았잖아요.”
“그분처럼 생각하지 마.”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평생 닮으려고만 했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버릇까지. 그런데 그렇게 십 년을 넘게 보고도, 그 사람이 무릎 위로 뭘 세고 있었는지 몰랐어. 물어볼 생각을 못 했어. 닮으면, 다 안다고 착각하게 되거든.”
그 애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닮는 거랑 아는 건 달라. 닮으려고 하면 네가 없어져. 알려고 하면, 둘 다 남아.”
그 애는 알아들었다는 얼굴은 아니었다.
며칠 뒤, 그 애가 녹음의 한 구간을 몇 번이고 되감더니,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
“선배님, 여기요. 비어요.”
진입 십 초 전, 내가 ‘기다릴게’라고 말한 바로 다음이었다. 거기서 네 손가락이 한 박자를 놓쳤다. 1.337초가 와야 할 자리에, 2초가 넘는 빈틈이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박자에서, 너는 ‘기다리긴 뭘 기다려’라고 받아치고 있었다.
나는 그 녹음을 수백 번 들었다. 그 빈틈은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나는 늘 네 목소리를 들었고, 네 목소리에 내 기억을 맞추느라 바빴다. 그 애는 네 손을 들었다.
기다릴게, 라는 말에 네 손이 멈췄다. 한 박자만큼. 너는 웃으면서 받아쳤지만, 손은 거짓말을 못 했다.
그 애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다. 나는 알아듣는 데만 십몇 년이 걸렸는데.
훈련 네 해째 봄, 박자가 흔들렸다.
펄스가 예정보다 몇 분 일찍 왔다. 다음 것은 몇 분 늦게 왔다. 그다음은 또 일찍. 기계가 이렇게 흔들릴 리는 없었다. 분석 팀은 모듈이 고장 나고 있다고 했고, 누군가는 선체가 부서지는 중이라고 했다. 통제실에 불안이 퍼졌다. 위원회에서 전화가 왔고, 국장은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애가 간격을 뽑아 왔다. 몇 분씩 흔들리는 간격을 네 쪽의 시간으로 되돌리니, 백분의 몇 초짜리 흔들림이 되었다. 우리는 그걸 녹음 속 네 손가락 소리의 흔들림과 나란히 놓았다.
모양이 같았다.
손이었다. 너의 손.
기계가 멈추었고, 네가 손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너는 살아 있었고, 싸우고 있었다. 가끔 간격이 조금 길어지는 곳이 있었다. 망설임이었다. 다른 손으로 무언가를 하느라 박자를 놓칠 뻔한 자리. 그 애는 그 자리마다 작게 표시를 해 두었다. 나는 그 표시를 볼 때마다 숨을 멈추었다. 그렇게 몇 주가 갔다.
그리고 어느 날, 박자가 다시 반듯해졌다.
너는 고쳤다. 당연히.
“사람 박자는 이렇게 흔들리네요.”
그 애가 모니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알아볼 수 있는 거야.”
그해 가을, 그 애는 PLANCK-2의 정식 관제사로 임명되었다.
첫 공식 근무 날, 나는 조종 훈련생 자리에서 그 애가 관제석에 앉는 모습을 보았다. 몇 해 전까지 내가 앉던 자리였다. 이상하게 아깝지 않았다. 그 자리가 이제 제 주인을 찾은 것 같았다.
그 애는 앉기 전에 콘솔을 두 번 두드렸다. 똑똑.
내 것도, 너의 것도 아닌 박자였다.
7. 선내 시간 03:40
딸깍.
불빛이 멈춘다.
모듈은 멀쩡하다. 죽은 건 모듈을 켰다 껐다 해 주던 작은 타이밍 회로다. 계기판 뒤쪽 어딘가에서 연기가 가늘게 올라온다. 헬멧 안에서도 탄내가 날 것만 같다.
나는 수동 스위치에 손가락을 올린다. 그리고 센다.
일 점 삼삼칠삼.
누른다. 뗀다. 누른다.
잔디밭에서 수천 번 해 본 일이다. 무릎 대신 스위치일 뿐.
처음 이 박자를 센 건 열두 살 때였다. 천문대 견학에서 해설사가 펄서 소리를 틀어 주었다. 똑, 똑, 똑. 별이 내는 소리라고 했다. 다른 애들은 시시하다고 했고, 나는 그날 밤 잠을 못 잤다. 너무 규칙적이어서 사람들이 처음엔 누가 보낸 신호인 줄 알았다는 이야기가, 꼭 별이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 뒤로 나는 하늘을 볼 때마다 그 박자를 셌다. 누가 부르면, 대답할 수 있게.
이제는 내가 부르는 쪽이다.
다른 손으로는 항법 컴퓨터의 덮개를 뜯는다. 어차피 좌표 하나 못 읽는 컴퓨터다. 그 안에 쓸 만한 수정 발진기가 하나 있을 것이다. 한 손으로는 박자를 세고, 한 손으로는 납땜을 한다. 사관학교에서 이런 건 안 가르쳐 줬다. 장갑 낀 손으로 인두를 잡는 것도, 그 끝이 떨리지 않게 숨을 참는 것도.
나는 기계처럼 세지 못한다. 조금 빠르고, 조금 느리다. 전선이 손에서 미끄러질 때마다 한 박자씩 망설인다. 지구에서는 지금쯤 펄스가 들쭉날쭉 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배가 부서지고 있다고 하겠지. 누군가는 이제 끝이라고 하겠지.
너라면 알아듣겠지. 이게 손이라는 걸.
편지는 이런 순간에도 칠 초마다 도착한다. 손이 두 개뿐이라 끄지도 못하고, 나는 흘려듣는다. 밀린 편지는 이제 셀 수도 없다. 네 쪽으로는 몇 년 치다. 그러다 한 통이 귀에 걸린다.
“요즘 나를 멀리서 지켜보는 녀석이 하나 있어. 꼭 옛날의 나 같아. 다들 그러는데, 걔한테는 내가 별이래. 웃기지. 평생 네 위성이었던 놈한테.”
누른다. 뗀다.
나는 웃는다. 스위치를 누르면서 웃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박자가 조금 흐트러진다. 그 녀석도 이 흔들림을 듣고 있을까. 옛날의 너 같은 눈으로.
위성이라니.
너는 네가 내 위성이라고 생각하지. 도서관 창가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내 뒤를 쫓아 전역하고, 같은 학교에 가고, 같은 곳에 들어오고. 너는 그걸 전부 네가 끌려온 거라고 생각하지.
바보.
별도 흔들린다.
행성이 별을 돌 때, 별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아주 조금씩, 행성 쪽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다. 너무 작아서 눈으로는 안 보이는 흔들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흔들림을 재서, 보이지도 않는 행성을 찾아낸다. 별이 흔들리고 있다는 건, 그 옆에 뭔가가 있다는 뜻이니까.
사실 행성이 별을 돈다는 말부터가 틀렸다. 둘 다, 둘 사이의 어딘가를 돈다. 별이 무거우면 그 어딘가가 별 가까이에 있을 뿐이다.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도서관 창가에 네가 처음 앉은 날부터.
너는 모르지. 내가 일부러 도서관이 잘 보이는 벤치를 골라 앉았다는 걸. 네가 나를 볼 수 있게. 너는 모르지. 석박 통합 과정 원서를 낼 때, 더 좋은 학교에서 먼저 연락이 왔었다는 걸. 나는 거절했다. 이유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나한테도.
누른다. 뗀다. 누른다.
그날 옥상에서 네가 조종석을 나에게 주었을 때, 내가 왜 그렇게 울었는지 너는 아직도 모를 것이다. 미안해서만은 아니었다. 안도해서만도 아니었다. 네가 나를 그만큼이나 끌어당기고 있었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똑똑히 느꼈기 때문이다.
별이 흔들린다는 걸, 별이 제일 늦게 안다.
삼 분쯤 지나서 발진기가 잡힌다.
불빛이 혼자 깜빡이기 시작한다. 켜지고, 꺼지고, 다시 켜진다. 흔들림 없이, 기계의 박자로.
나는 스위치에서 손을 뗀다. 손가락이 떨린다. 장갑 끝이 조금 해졌다. 이 정도로 해지면 안 되는 건데. 여분의 부품은 이제 남아 있지 않다. 이 발진기가 죽으면, 다음은 없다.
깊이 계기를 본다. 숫자가 불어나는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네 쪽에서 보는 내 박자는 이제 다섯 시간이 넘었을 것이다.
서둘러, 이 화상아.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다시 무릎을 두드린다.
8. 하강
그 뒤로 삼 년은 빨리 갔다.
PLANCK-2의 선체가 올라갔고, 엔진이 얹혔고, 사차원 항법 장치가 들어갔다. 설계팀은 조종석 옆에 자리를 하나 더 만들었다. 돌아올 때는 두 사람이 타야 했으니까. 그 빈자리의 이름은 설계도 위에서 오래도록 ‘보조석’이었다. 나는 서른아홉에 조종 자격을 다시 땄다. 원심 분리기는 9G가 아니라 8G에서 멈췄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교관이 말했다. 교관은 나보다 열 살이 어렸다.
그 애와 처음 합을 맞춘 날을 기억한다. 시뮬레이터 안에서, 헤드셋 너머로 그 애의 목소리가 벡터를 불렀다. 나는 그 목소리를 따라 한 걸음씩 디뎠다. 몇 번째 훈련이었을까. 내가 방향을 틀려고 손을 움직이기도 전에, 그 애의 경로가 먼저 들어왔다. 나는 조종간을 쥔 채로 한참 멍하니 있었다. 누군가 나보다 반 박자 먼저 내 길을 알고 있다는 것. 그게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나는 조종석에 앉고서야 알았다. 너는 이런 걸 들으며 날았구나.
국장은 그사이 눈에 띄게 늙었다. 은퇴를 미루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유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네 박자는 다섯 시간 사십 분이 되었다가, 여섯 시간이 되었다. 신호는 조금씩 흐려졌고, 네 복셀을 향한 감지기 배열은 두 개로, 다시 세 개로 늘었다.
출발 열한 달 전, 박자가 다시 흔들렸다.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한 주가 가고, 한 달이 가도, 펄스는 계속 조금씩 일찍, 조금씩 늦게 왔다. 너는 다시 손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고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 애가 매주 흔들림의 크기를 그래프로 뽑아 왔다. 그래프는 조금씩, 그러나 한 번도 쉬지 않고 올라갔다. 무슨 뜻인지는 둘 다 알았다.
너는 지쳐 가고 있었다.
나는 매일 밤 지쳐 가는 너의 손을 들었다. 출발을 앞당길 수는 없었다. 창은 창이 열릴 때 열린다. 나는 그 열한 달 동안, 누군가의 손이 조금씩 무거워지는 소리를 휴대전화의 톡 소리로 들었다. 가끔 간격이 크게 벌어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음 톡이 올 때까지 숨을 쉬지 못했다. 네가 손을 바꾸는 중이라는 걸, 그 애가 나중에 알아냈다.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다시 오른손으로.
자정의 일 분은 점점 짧아졌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편지를 듣느라 네가 박자를 한 번이라도 놓치지 않았으면 해서였다. 마지막 몇 달 동안 나는 거의 매일 같은 말을 보냈다.
“조금만.”
출발 전날 밤, 나는 그 애와 옥상에 있었다.
바람이 쌀쌀했다. 나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담배를 끊은 지 칠 년이 넘었다. 그 애는 난간에 기대어 한참 하늘을 보다가 물었다.
“선배님, 돌아오시는 거죠?”
“돌아올 때는 네가 길을 비춰.”
“제 박자로요?”
“네 박자로.”
그 애는 조금 웃었다. 그러다 무언가를 계산하는 얼굴이 되었다. 귀환 창은 이미 예측되어 있었다. 너를 태우고 그곳을 떠날 수 있는 다음 창은, 지구 시간으로 스물다섯 해 뒤였다.
“돌아오시면 저 몇 살이에요?”
“예순쯤.”
“그럼 제가 선배님보다 선배네요.”
우리는 같이 웃었다. 웃다가 둘 다 말이 없어졌다.
“그분 만나면, 제일 먼저 무슨 말 하실 거예요?”
나는 한참 생각했다. 구 년 동안 매일 밤 일 분씩 말을 해 왔는데, 정작 그 질문에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모르겠어. 그 사람이 먼저 할 것 같아.”
출발 당일 아침, 국장이 격납고로 나를 찾아왔다.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국장은 PLANCK-2의 선체를 한참 올려다보다가 말했다.
“돌아오면, 내가 직접 사과하겠다고 전해 주게. 이메일 말고.”
“직접 하십시오. 기다리시면 되잖습니까.”
국장은 웃었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스물다섯 해가 어떤 숫자인지,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
창은 예측된 시각에 정확히 열렸다. 24시간 30분.
시뮬레이터에서 수천 번 앉아 본 조종석이었다. 그래도 진짜는 달랐다. 좌석의 쿠션이 생각보다 딱딱했고, 헬멧 안의 공기에서 새 장비 냄새가 났다. 여기 네가 앉았었다. 이 배가 아니라 그 배였지만, 바로 이 자리에.
헤드셋 너머로 소리가 났다. 똑똑.
“PLANCK-2, 관제.”
그 애의 목소리였다.
“관제, 여기는 PLANCK-2. 진입 삼십 초 전.”
그때 헤드셋 너머로 그 애가 말했다.
“선배님, 손가락요. 마이크에 다 들어가요.”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오른손 검지가 콘솔 모서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일 점 삼삼칠삼 초 간격으로. 나도 모르게.
도서관 책상 밑에서 연습하던 박자였다. 잊었다고 생각한 박자.
나는 손을 거두었다.
그건 너의 박자였다. 두드리는 건 네 몫이었다. 내 몫은, 듣는 것이었다.
“진입 십 초 전.”
시공간은 연체동물 같다고 너는 말했다. 막상 그 속에 들어와 보니, 연체동물은 너무 점잖은 비유였다.
사방이 한꺼번에 접히고 펴졌다. 앞이 옆이 되고, 옆이 어제가 되었다. 관제석에서 수천 번 보았던 화면들이 이제는 창밖에서 살아 움직였다. 그 애의 목소리가 사차원 벡터를 하나씩 불렀고, 나는 그 벡터를 따라 한 걸음씩 디뎠다. 한 걸음마다 배 전체가 삐걱거렸다. 몸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 계기판을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소음 아래로, 네 박자가 들렸다. 배의 수신기가 잡아 온, 흔들리는, 지친 박자.
목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다.
그 애의 계산은 양의 w 방향을 가리켰다. 그런데 박자는 반대쪽에서 들렸다. 내가 한쪽으로 기울 때마다 박자의 간격이 아주 조금 늘어났고, 반대로 기울면 줄어들었다. 가까워지면 빨라지고, 멀어지면 느려진다. 박자는 음의 w 쪽이었다.
계산을 믿어야 했다. 관제사의 계산을 무시하는 조종사가 어떻게 되는지, 관제석에 앉아 봤던 나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데 귀가 계속 반대쪽을 가리켰다.
“관제, 박자가…”
“알아요.”
그 애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숨이 가빴다.
“계산은 이쪽인데… 선배님, 저도 들려요. 박자 쪽이에요. 박자 쪽으로 가세요.”
나는 방향을 틀었다.
배가 비명을 질렀고, 몸이 한 번 뒤집혔다가, 앞이 다시 앞이 되었다.
통과였다.
나중에 그 애가 다시 계산해 보니, 양의 w 쪽은 목이 막 무너지고 있던 자리였다고 했다. 계산이 틀린 게 아니었다. 계산이 따라잡기에는 시공간이 너무 빨리 다시 그려지고 있었을 뿐.
너의 울림은 나를 건너, 한 사람에게 더 닿아 있었다.
점프 포인트를 빠져나오자, 지구에서 석 달 거리의 까만 하늘이 펼쳐졌다. 네가 처음 보았을 그 하늘이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하강을 시작하자 그 애의 목소리가 이상해졌다. 조금씩 빨라지고, 조금씩 높아졌다. 내가 우물 속으로 내려갈수록, 지구의 시간은 내 쪽에서 볼 때 빨라지고 있었다. 그 애가 한 문장을 말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짧아졌다.
마지막으로 알아들을 수 있었던 건 한마디였다.
“다녀오세요.”
그다음부터 그 애의 목소리는 새소리처럼 짧게 지저귀다가, 곧 가느다란 삑 소리가 되었다. 배의 인공지능이 그 소리들을 붙잡아 원래 빠르기로 늘여서 쌓아 두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가 되었다. 아니, 혼자가 아니었다.
우물 속으로 내려가는 내내, 그 애의 편지가 쌓였다.
그 애는 내가 하던 대로, 매일 자정에 일 분을 썼다. 그 하루하루가 이제 몇 초 간격으로 도착했다. 나는 그 편지들을 전부 들을 수 없었다. 한 통을 듣고, 여러 통을 건너뛰었다.
“오늘도 박자 들려요. 선배님 쪽으로 가고 있어요.”
“국장님이 쓰러지셨어요. 괜찮으실 거래요.”
“선배님, 박자가 더 흔들려요. 서두르세요. …서두르고 계시겠죠.”
그리고 몇 통 뒤.
“국장님이 돌아가셨어요. 마지막까지 선배님들 얘기를 하셨어요. 직접 사과하겠다던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하다고, 대신 전해 달래요.”
나는 그 한 통을 두 번 들었다. 그리고 알았다.
너는 이렇게 나를 들었구나.
내 하루가 칠 초마다 도착하는 걸, 따라잡을 수도 없이 쌓여 가는 걸. 하나를 듣고 여럿을 건너뛰면서, 건너뛴 편지들에 무슨 말이 있었을지 생각하면서. 그 사이에 누군가 늙고, 누군가 떠나는 걸. 그 긴 시간을, 너는 이렇게 들었구나.
나는 계기판의 숫자 하나만 보았다.
네 박자의 간격.
지구에서 여섯 시간이 넘었던 그 간격이, 내가 내려갈수록 줄어들었다. 내 시간이 너의 시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박자를 귀에 대고 배를 몰았다. 간격이 줄어드는 쪽으로. 조금이라도 늘어나면 방향을 되돌렸다. 배는 삐걱거리며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창밖의 별빛이 조금씩 푸르게 밀려났다. 조종간을 쥔 손에 땀이 찼다.
내려가는 동안 나는 자꾸 계산을 했다. 버릇이었다. 지금 내 일 분은 지구의 몇 시간일까. 이 숨 한 번 사이에, 그 애는 몇 번 자정의 녹음 버튼을 눌렀을까. 계산은 할 때마다 더 큰 숫자를 내놓았다. 나는 계산을 멈췄다. 계산으로는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었다. 붙잡을 수 있는 건, 귀에 들어오는 박자 하나뿐이었다.
한 시간.
십 분.
일 분.
펄스가 삑 소리에서 톡 소리로 바뀌도록 수신기를 조정했다. 휴대전화의 톡 소리와 같은 소리였다. 구 년 동안 내 주머니 속에서 울리던 소리.
십 초.
삼 초.
그리고,
톡.
…톡.
톡.
일 점 삼사. 일 점 사일. 일 점 이구. 일 점 사육.
사람의 박자였다. 지친 사람의 박자.
녹음 파일도, 휴대전화의 알림도, 그래프 위의 바늘도 아니었다. 사람의 속도로, 지금 이 순간 네가 두드리고 있는 소리를 듣는 건 구 년 만이었다. 나는 조종간을 쥔 채로 울었다. 헬멧 안에서는 눈물을 닦을 수가 없었다. 설계할 때 아무도 생각을 안 했나 보다.
처음에는 별인 줄 알았다. 까만 하늘 한가운데서, 아주 작은 빛 하나가 켜졌다 꺼졌다 했다. 그런데 별은 그렇게 망설이며 깜빡이지 않는다.
PLANCK-1이었다.
작았다. 선체 한쪽이 길게 갈라져 있었다. 조종실 창문 하나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켜지고, 꺼지고, 다시 켜졌다. 조금 늦게, 조금 일찍. 기계의 박자가 아니었다.
손이었다. 내 계산으로는 한 시간이 넘었다. 한 시간 넘게, 너는 네 손으로 그 불빛을 켜고 있었다.
나는 도킹했다. 에어록을 지났다. 선실에는 공기가 없었고, 조용했다. 벽을 짚은 장갑 끝으로 아주 작은 진동이 전해졌다. 스위치를 누를 때마다 선체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톡. …톡.
나는 조종실 해치 앞에 섰다. 장갑 낀 손을 들었다.
그리고 두드렸다. 네가 알아들을 수 있는 유일한 말로.
일 점 삼삼칠삼 초 간격으로.
9. 선내 시간 06:12
한 시간 이 분째다.
오른손 검지는 오래전에 감각이 없다. 가운뎃손가락으로 바꿨다가, 왼손으로 바꿨다가, 다시 오른손이다. 장갑 끝이 해져서 안감이 비친다. 발진기는 다섯 시간 십 분째에 죽었다. 이번에는 고칠 부품이 남아 있지 않았다.
누른다. 뗀다.
헬멧 안의 숫자는 41:48:03. 산소는 여전히 넉넉하다. 우습게도,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나는 고작 여섯 시간을 썼다.
깊이 계기는 이제 보지 않는다. 보지 않아도 안다. 네 쪽에서 보는 내 박자는 여섯 시간이 넘었을 것이다. 게다가 손으로 누르는 박자는 기계만큼 반듯하지 않다. 언젠가는 네 감지기에 닿지 않게 된다. 그 언젠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누른다. 네가 듣고 있으니까. 네가 들을 수 있는 동안은.
마지막 편지는 이십 분쯤 전에 왔다.
“내일 출발해.”
그 앞의 편지들은 거의 다 같은 말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조금만. 일 분 중에 오십몇 초는 그냥 비워 둔 편지들. 나는 그 빈 소리를 들으면서 알았다. 네가 내 시간을 아껴 주고 있다는 걸. 편지를 듣느라 내가 박자를 한 번이라도 놓치지 않게.
‘내일 출발해’ 뒤로는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네가 배에 탔다는 뜻이다. 네가 그 창을 통과하고, 그 까만 하늘을 지나서, 이 우물 속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뜻이다. 네게는 긴 여정일 그 시간이 여기서는 이십 분이다.
무슨 말부터 할지 생각해 둔 게 있었다. 꽤 근사한 말이었다. 이십 분 동안 스위치를 누르면서, 그걸 다 잊었다.
누른다. 뗀다.
배가 한 번 크게 흔들린다. 무언가가 선체에 닿았다. 나는 파편이 부딪혔나 보다 한다. 이 깊이까지 떨어지는 파편이 있다면.
그리고 의자가 울린다.
톡.
나는 손을 멈춘다.
…톡.
선체를 타고 진동이 올라온다. 바닥에서, 벽에서, 내 등 뒤의 의자에서.
톡.
일 점 삼삼칠삼.
내 박자다. 내가 두드리지 않는 내 박자.
한동안 나는 움직이지 못한다. 너무 오래 혼자 두드려서, 드디어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박자는 계속된다. 반듯하게.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기계처럼 반듯한데, 기계는 아니다. 기계는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나는 해치를 연다. 손이 떨려서 잠금장치를 두 번 놓친다.
빛이 들어온다. 헤드램프 불빛 너머로, 흰 우주복 하나가 서 있다.
내 무전기는 전력이 끊긴 지 오래다. 너는 그걸 아는 것 같다. 아무 말 없이 다가와서, 네 헬멧을 내 헬멧에 댄다.
유리와 유리가 닿는다.
“…찾았다.”
네 목소리가 유리를 건너와서, 내 머릿속에서 울린다. 공기가 없는 곳에서 소리는 건너오지 못한다. 닿아 있지 않으면. 닿아 있으면, 건너온다.
헤드램프 불빛에 네 얼굴이 보인다.
늙었다.
눈가에 주름이 있다. 관자놀이가 희끗하다. 볼이 조금 패었다. 아홉 해. 나에게는 여섯 시간이었던 것이, 네 얼굴에는 아홉 해로 새겨져 있다.
그런데 눈은 그대로다. 도서관 창가에서 나를 보던 그 눈.
“빨리 왔네.”
내가 먼저 말한다. 근사한 말은 끝내 생각나지 않는다.
“늦어서 미안해.”
네가 말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그게 우습고, 그게 아파서, 나는 웃는다. 웃다가 운다. 유리 너머에서 너도 운다.
“어휴, 이 화상아. 늙었네.”
“너는 그대로네.”
“나는 여섯 시간밖에 안 됐거든.”
말을 하면서도 내 손가락은 움직이고 있다. 허벅지 위에서, 누른다, 뗀다. 멈출 수가 없다. 한 시간 동안 멈추지 않았던 손이라서, 멈추는 법을 잊었다.
네 손이 내 손을 덮는다.
“이제 그만 두드려도 돼.”
그 말을 듣고서야 손이 멈춘다. 네 장갑 안에서, 내 장갑이 천천히 풀린다.
네 손은 크다. 장갑 너머로도 알 수 있다. 벤치 앞에 처음 섰을 때, 너는 책을 옆구리에 낀 채 손을 어디 둘지 몰라 했었다. 그 손이 지금 내 손을 붙들고 있다. 아홉 해 동안 이 손이 무엇을 붙들고 살았는지, 나는 모른다. 알고 싶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네가 만든 장, 찾았어.”
네가 말한다. 헬멧을 맞댄 채로, 아주 가까이에서.
“박자 말이지?”
너는 고개를 끄덕인다. 헬멧끼리 부딪혀서, 둘 다 조금 웃는다.
“그것도.”
너는 무슨 뜻이냐는 눈으로 나를 본다.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오늘이 아닐 뿐.
“위성이 별 찾으러 왔어.”
네가 말한다. 쑥스러운 듯이.
“별도 흔들려, 바보야.”
“…무슨 소리야?”
“나중에 얘기해 줄게. 시간은 많으니까.”
그 말을 해 놓고, 우리는 둘 다 잠깐 조용해진다. 시간이 많다는 말이 이렇게 이상하게 들리는 곳은, 우주에 여기밖에 없을 것이다.
네가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해치 너머, 네 배 쪽을 가리킨다.
“돌아가는 길은 네가 몰아.”
나는 해진 장갑으로 네 헬멧을 한 번 두드린다. 똑.
“당연하지.”
10. 두 자리
PLANCK-2의 조종실에는 자리가 두 개 있었다.
아주 오래전, 나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서로를 조금만 더 사랑했다면, 조종사와 관제사라는 그 두 자리를 우리에게 딱 맞는 두 자리라고 생각했을 거라고.
너는 조종석에 앉았다. 해진 장갑을 벗고 새 장갑을 끼는 데 삼 초가 걸렸고, 계기판을 훑어보는 데 오 초가 걸렸다. 그리고 조종간을 쥐었다. 구 년 동안 이 배를 몰 준비를 한 건 나였는데, 이 배에 처음 앉아 보는 네가 여섯 시간 만에 이 배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옆, 보조석에 앉았다. 항법 화면이 내 앞에서 켜졌다.
조종석은 너의 꿈이었고, 이 자리는 나의 꿈이었다. 같은 배 안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그 두 자리가, 처음으로 우리에게 딱 맞았다.
귀환 창까지는 지구 시간으로 스물다섯 해가 남아 있었다. 이 깊이에서는 열세 시간이었다.
우리는 우물 속에서 그 열세 시간을 기다렸다.
너는 네 시간쯤 잤다. 우주복을 입은 채로, 조종석에 기대어. 깨어나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배가 고프다고 했다. 나는 비상식량을 데웠다. 너는 한 입 먹고 싱겁다고 했다. 구내식당 카레 얘기를 하려다가, 나는 그만두었다. 대신 너는 헬멧 설계팀에 따질 게 있다고 했다. 헬멧 안에서는 눈물을 닦을 수가 없다고. 나도 그 생각을 했다고 말하자, 너는 한참 나를 보다가 웃었다.
그 애의 편지는 계속 도착했다. 우리는 그걸 같이 들었다.
그 애의 목소리가 한 시간마다 두 해씩 늙어 갔다. 결혼을 했다고 했다. 몇 통 뒤에는 뒤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또 몇 통 뒤에는, 그 아이가 녹음기에 대고 뭐라고 떠들다가 혼이 났다. 그 애의 목소리가 조금씩 낮아지고, 조금씩 거칠어졌다. 누군가의 은퇴식 이야기가 나왔고, 새 국장 이야기가 나왔다. 관제석은 그 애가 지켰다. 한 번도 비우지 않았다.
“관제석에 앉은 지 이십 년이에요. 오늘도 인사했어요. 똑똑.”
너는 그 편지들을 들으면서, 가끔 나를 보았다. 너는 알았다. 누군가의 날들이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쌓이는 걸 듣는 게 어떤 건지.
기다림이 절반쯤 지났을 때, 네가 불쑥 말했다.
“그 열아홉 시간 말이야.”
나는 항법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끄려고 했지.”
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언제 알았어?”
“그때도 반쯤은 알았어. 그래서 그렇게 믿겠다고 한 거야.”
나는 그제야 너를 보았다.
“너라면 그랬을 거니까. 나를 놓아주려고. 그리고 너는 결국 다시 켰잖아. 그것도 너라면 그랬을 거고.”
“나머지 반은 몇 년 뒤에 알았어. 출발 날 녹음에서, 내가 기다릴게, 했을 때 네 손이 한 박자 멈췄더라. 그 녀석이 찾아냈지. 나는 수백 번을 듣고도 몰랐는데.”
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열아홉 시간도 그거였어. 한 박자 멈춘 거. 조금 길게.”
너는 한참 나를 보다가, 웃었다. 조금 울었던 것 같기도 하다. 너는 그 둘을 잘 구분해서 내지 않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너는 벤치 이야기를 했다. 도서관이 잘 보이는 벤치를 일부러 골라 앉았다는 이야기. 더 좋은 학교의 연락을 거절했다는 이야기. 별도 흔들린다는 이야기.
나는 평생 너를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너도 나를 돌고 있었다. 우리 둘 다, 우리 사이의 어딘가를.
열세 시간이 지나고, 창이 열렸다.
너는 조종간을 당겼고, 배는 우물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길은 내려오던 길보다 길었다. 배는 몇 번이나 크게 흔들렸고, 그때마다 너는 한 손으로 조종간을 쥔 채 다른 손으로 내 팔을 짚었다. 괜찮냐고 묻는 대신이었다. 나는 벡터를 불렀고, 너는 내가 다 부르기도 전에 반쯤 틀어 놓았다. 내가 반 박자 늦으면, 너는 반 박자 기다려 주었다. 관제석에서도, 조종석에서도 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같은 배 안에서, 서로의 박자를 듣는 일.
우물 어귀가 가까워지자, 항법 화면 위로 사차원 벡터들이 어지럽게 흘렀다. 기준이 될 박자가 필요했다. 네 박자는 이제 내 옆에 앉아 있었다.
그때 수신기가 울렸다.
똑똑.
쉬고.
똑똑.
나는 세지 않았다. 세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누구야?”
네가 물었다.
“후배. 관제석한테 인사하는 박자야.”
너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그 박자 쪽으로 배를 틀었다.
그건 너의 박자도, 나의 박자도 아니었다. 서른 해 가까이 관제석에 인사해 온, 그 애 자신의 박자였다. 닮지 않아서, 나는 그 박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웜홀을 빠져나오자, 헤드셋 너머로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빨라지지도, 높아지지도 않는, 제 속도의 목소리였다.
“PLANCK-2, 관제. …어서 오세요, 선배님들.”
나보다 나이 많은 목소리였다.
지상에서 우리를 맞은 건 머리가 하얗게 센 사람이었다. 옆구리에 태블릿을 끼고 있었다. 그 사람은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늦으셨어요.”
“빨리 왔는데.”
그 애가 웃었다. 주름이 깊었다. 너는 그 애를 한참 보다가, 손가락 마디로 그 애의 태블릿을 두 번 두드렸다. 똑똑. 그 애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네가 떠난 날부터 치면 서른다섯 해가 지나 있었다. 거리의 차들은 소리가 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더 이상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지 않았다. 너는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신기해했다. 나는 네가 신기해하는 얼굴을 보는 게 신기했다.
며칠 뒤, 우리는 국장의 묘에 갔다. 비석은 생각보다 작았다. 너는 한참 그 앞에 서 있다가, 장갑을 벗은 손으로 비석을 한 번 쓸었다.
“사과는 받은 걸로 할게요.”
돌아서면서 너는 나에게 물었다. 국장이 관제석에서 놓아 본 적이 있다던 사람이 누구였냐고. 나는 모른다고 했다. 끝내 묻지 못했다고.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도 누군가의 박자를 오래 들었을 거라고, 너는 말했다.
그날 밤, 우리는 옥상에 올라갔다.
건물은 새로 지어져 있었고, 난간의 모양도 달라져 있었다. 그래도 바람은 그대로였다. 그날도 바람이 쌀쌀했다.
“담배는?”
“끊었어.”
“잘했네.”
너는 난간에 기대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관학교 잔디밭에서, 벤치에서, 몇백 번도 더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그리고 내 손등 위에 손가락을 올려, 두드리기 시작했다.
톡. 톡. 톡.
나는 세지 않았다.
나는 평생 너를 보았다. 하늘을 보는 너를.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너를 보지 않고, 네가 보는 것을 보았다.
까만 하늘이었다.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빈 곳은 없었다. 네 말대로였다.
이제는 따라가지 않아도 되었다. 너의 울림은, 내 손등 위에 있었으니까.